조지 오웰 시점, "왜 민중은 개돼지인가?"

책으로 답하다

by 가가책방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꺼내보는 북큐레이터 가가C입니다.

사실 최근 몇 달은 북 큐레이터는커녕 도서, 출판 관련 종사자라고 말하기 어색할 만큼 책에서 멀어지기도 했는데요.

새삼 깨닫게 된 건 "육체노동이 이렇게 무섭도록 매력적"이라는 거였어요.

그 어떤 창조, 창의 활동에 견주어도 부족하다거나 못하지 않은 육체 활동 시간.

어느 직업, 어떤 영역이 더 우월하다거나 낫다는 판단이나 결론들은 얼마나 경솔한 구분짓기였는지요.


책방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 조지 오웰 <동물 농장>을 언급하게 됐는데, 얘기 끝에 '왜 개돼지라고 했는지 알겠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손님이 가시고 한참 뒤에 불쑥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래서 개돼지였을까?'


간략하게 언급했기에 '동물들이나 인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정도에 그쳤던 게 마음에 걸린 거죠. 그러면서 개나 돼지가 어땠는지 기억과 경험에서 떠올려보기 시작했어요. 왜 개돼지일까.


오랜만에 다시 조지 오웰 <동물농장>을 읽게 된 이유였습니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왜 그 영화와, 고위 공무원이라는 자는 민중을 빗대어 개돼지라고 했을까요?

동물이나 짐승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동물농장>은 영국의 한 농장에서 동물들이 혁명을 일으켜 농장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끼리 사회를 만들어 자치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와 정치에 깊은 함의를 담고 있고, 소설 속 캐릭터들이 투영하는 현실 속 인물들이 있어서 파고 들어가면 어려워지지만 가볍게 우화로 읽어도 좋은 고전이죠.

농장에는 돼지, 개, 닭, 말, 양, 당나귀, 까마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을 몰아낸 다음 사회 주도권을 잡는 동물이 돼지가 되는데 그 이유는 동물 중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돼지들의 의도가 있기는 했지만 돼지를 보좌해 질서 유지와 치안을 담당하는 역할은 개에게 돌아갑니다. 다른 동물들은 무관심하거나, 무지하거나, 무력하죠.


자, 다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왜 개돼지라고 생각하세요?


무지하기 때문일까요?

무력해서?

아니면 무관심하니까?


<동물농장> 속 동물 중에 가장 영리하고, 강력하고, 권력에 관심이 컸던 게 바로 돼지와 개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돼지나 개의 습성 혹은 주변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태도에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해 보자면 돼지는 무서운 동물이었습니다.

먹성이나 식성도 무서웠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출산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돼지가 새끼를 낳자마자 먹어치운다는 얘기였어요. 스트레스받는 환경을 만든 인간의 나쁨은 물론 간과할 수 없지만 스트레스를 새끼를 먹어치우는 걸로 표출한다는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던 거죠.


돼지는 영리함과 탐욕스러움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물농장> 속 돼지들이 권력이든 부든 이익을 추구하는 데 밝은 게 이해되죠.


개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됩니다. 주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그 영향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죠.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특히 최근 이슈가 된 '사람을 무는 개'도 거슬러 올라가면 주인의 전적인 책임 소재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요.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은 새끼 개를 데려다 자기들을 지키는 무기이자 무력으로 키워냅니다. 부모도, 친구도 없이 오직 돼지를 위해 충성하죠. 같은 동물을 희생시키는 일도 주저 없이 행합니다.


더 깊이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까지 얘기한 돼지와 개의 모습에서 '왜 민중이 개돼지인가?'라는 질문에 답해볼까요.


같은 개돼지라도 다른 사람이 꺼낸 말이기에 그 안에 담긴 의도에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일단은 뭉뚱그려 답해보기로 해요.


돼지는 탐욕스럽습니다. 눈 앞에 있는 먹이, 크고 작은 이익에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달려들죠. 몸싸움은 기본, 유혈사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크고 힘이 센 돼지일수록 그 성향은 위력적인 모습을 띄죠. 소설에서처럼 자신보다 더 무지한 존재를 속이고 기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라면요.


인간은 탐욕스럽습니다.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탐욕은 자제력을 잃기도 하죠. 다수가 되어 '민중'이라는 가죽을 뒤집어쓰면 그때부터는 선동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의 생각이 곧 동물 전체의 생각으로 뒤바뀌고, 몇몇 희생양을 세워 명분을 만들거나 공포심을 조성하기도 하죠.


가깝거나 먼 미래, 더 많은 사람들의 이익, 약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와 자기들의 이익에 탐욕스러운 면모, 그것을 두고 민중을 돼지라고 불렀던 건 아닐까요.


개의 경우는 조금 더 안쓰럽습니다. 나쁜 훈련을 받았더라도 일찍, 꾸준한 교정과 감화를 거쳤다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균형 감각을 되찾을 만큼 충분한 정보와 교류, 논의를 거칠 기회를 얻기 힘듭니다. 먹이를 주는 자를 주인으로 모시며 그 명령을 거부하거나 사리를 분별하지 않는 모습. 사용자는 충성스럽다며 칭찬하고 덤으로 맛있는 간식을 하사하겠지만 그 이빨엔 늘 희생자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마르지 않겠죠.


개돼지를 칭하면서 좋은 면을 들여다봤을 리 없기에 나쁜 면에서 개를 결론짓자면 개의 맹목성을 민중에 빗댄 게 아닐까 합니다. 이슈가 던져지면 그 이슈를 물고 뜯고, 가해자든 피해자든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쪽으로 편을 갈라 다투느라 정작 중요한 근원을 잊어버리고, 달콤한 간식에 유혹당하듯 이익에 휘둘리는. 내가 잘 되면,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


<동물농장>에서 개들은, 돼지들이 키워낸 개들은 무력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을 뿐 누구보다 강력한 이빨과 빠른 발로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고 압도하죠.


<동물농장>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돼지들은 이미 완벽하게 읽고 쓸 수 있었다. 개들도 많이 배워서 상당히 잘 읽을 수 있었지만, 일곱 계명 이외의 다른 글을 읽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물농장>

개도 돼지도 무지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오히려 뛰어나거나 준수한 편이죠. 하지만 돼지는 자기 돼지들만의 이익을 추구했고, 개는 돼지들이 만들고 바꿔놓은 일곱 계명 외에 다른 걸 읽는 데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민중을 '무식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표현을 정확히 하는 걸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민중은 무식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무식하기만 하지는 않으니까요. 무관심하거나 무지할 수는 있겠습니다.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누구나, 거의 누구나 그럴 테니까요.


왜 민중이 개돼지인가에 조지 오웰 <동물농장>으로 간략하게나마 답해보면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고전은 대부분 오래됐습니다. 낡기도 했고,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죠. 하지만 오래되었기에 어떻게 읽을지의 선택권도 방향도 거의 전적으로 독자에게 주도권이 돌아갑니다. 어떤 부분에서 고민하고 생각하던 부분에 단서가 되거나 답을 주기도 하죠.


<동물농장>을 단순히 동화처럼 우화처럼 읽어도 좋습니다. 우연히 다시 읽어보다 충격을 받아보는 경험도 신선하겠죠. 역사 배경을 알고 읽는다면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유가 되겠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볼륨, 부담 없는 소재, 현대 사회 속 이슈에 대입해봐도 무리 없는 현실성.

<동물농장>은 그 모두를 갖추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초입.

시원한 곳에서 <동물농장> 어떠세요?


가가책방에서 북큐레이터 가가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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