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에 사는 가가책방의 미스테리한 소통 방식

소통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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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우연을 필연이라고 믿을 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우리, 인연이네요." 보다는 어느 순간 "우리, 인연인가 봐요."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우연이 우연히 거듭되면 필연이라고 믿고 싶고, 믿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연한 사건을 우연이라고 가볍게 여겨 사소하게 만들어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가가책방 앞 벤치 위에 책방을 만들 때 잘라 쓰고 남은 나무 조각을 이용해서 '가가'라는 글자를 만들어 둔 건 지난해였을 거다. 처음 벤치를 둔 의도는 길가다 힘들면 쉬어 가시라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그만 쓸모 없어진 나무 조각을 치워버릴까'하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다 문득 생겨난 게 '가가'라는 글자다.

별 특별한 의도도 없고, 기획도 없고, 계획도 없고, 바라는 바도 없는 그저 우연한 발생이었다.


우습게도 지금은 이 글자가 없어지면 한동안 허전해질 게 분명하다고 느낀다. 우연히 생긴 별 것 아닌 그 나무 조각 몇 개의 조합이 하나의 의미가 된 거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가가'가 '갸갸'가 되어있던 건.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하고 보니 거기엔 '가가'가 아닌 '갸갸'가 있었다.


'갸갸', 무슨 의미일까.

꼭 로컬에서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특별한 어떤 곳에서의 소통에는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처음 떠올린 건 '가갸거겨' 순으로 가가 다음이 갸갸였을 거라는 추측이다.

다음으로는 조금 더 단순히, 별 의도 없이 하나씩 붙여서 '갸갸'가 됐을 거란 추측이었고, 조금 상상을 붙이면 '와와'가 아니라 자꾸 '가가'라고 하는 게 아쉬워서 '갸갸'라는 모호한 단어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원작자가 나타나서 어떤 의도였는지 밝히기 전까지 확실한 건 없다.

딱 하나 마음껏 상상해도 별 문제없을 거라는 확신을 제외하고는.


사실 간단해 보이지만 '가가'를 '갸갸'로 만든 건 엄청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벤치 위에 있는 조각들만을 활용해서 글자를 재조합해야 할 것만 같은 제약, 조건의 압력에서 벗어나 벤치 뒤쪽에 올려진 조각을 더했기 때문이다.


곁가지로, 요즘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계속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던데, 나는 '가가'를 '갸갸'로 만든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더욱 특별한 건 네모난 조각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굳이, 둥근 원목의 모퉁이 조각을 활용했다는 부분이다.

덕분에 뭔가 더 운치 있어졌다고 느끼는 건 나뿐일까.


사실 처음에는 이런 이벤트가 계속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이어졌다. 이런 말이 있잖은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The Show Must Go On"
KakaoTalk_20200425_054612969.jpg 더 미스터리 해져서 돌아왔다

다음은 더 미스터리 해져서 돌아왔다.

도, 드.

도드라고 읽었지만 처음에는 이런 생각도 했다.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아래 점으로 읽어서 '도다'가 되어야 하는 상상이다. 창작자의 독특한 의도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번 조합은 역삼각형의 비율을 취하면서 균형미를 자랑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디테일한 색 배치에도 의도가 엿보인다. 위쪽을 크고 색도 무겁게 하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상대하소의 배치랄까.


한글에서 '도드'는 별 의미 없어 보여서 아무 의미 없네라고 생각했다가 혹시 알지 못하던 새 단어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몇 가지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

'도드'는 미국 인디애나주 페리카운티에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망한 영국 신학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덧붙이면, 오바마 정부는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 재발을 위해 광범위한 금융 규제법을 제정하는데, 그 법안 이름이 도드프랭크법이다.


물론, 이건 다 상상이다. 별 쓸모도 없고, 의미도 없다. 처음 배치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재밌을까, 정도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보고, 발견하고, 상상하는 내가 즐겁다는 거다.


그리고 다음,

KakaoTalk_20200425_054613409.jpg 올 것이 왔다.


설마 이 단어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가장 적은 움직임으로 가장 강렬한 효과를 줄 수 있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단지 'ㅏ'를 'ㅗ'로 바꿨을 뿐인데 이처럼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뭔가 응원해주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지금은 멈춰있지만 '가보자!'라고 하는 참여 의지도 엿보인다.

좋은 것이다.


약간의 질책도 느껴진다.

너무 오래 멈추지는 말라는 다독임이다.

이 역시 좋은 것이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이 자리에서 감사를 전한다.


KakaoTalk_20200425_054617505.jpg 동생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다음 날이었나 그 다음다음 날이었나, 고고 며칠 후다.

아침에 보니 '디디'가 되어 있다.

디디.

짧은 중국어 지식을 떠올려 '디디'는 '남동생'이란 걸 기억해냈다.

아, 남동생이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찾아보니 '디디'는 엄청 많은 의미가 있었다.

사람 이름이거나 별명인 경우도 많다.


이쯤 되니 의문이 하나 늘었다.

이 조합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며 조각을 움직이고 있을까.

어떤 의도를 담아 조합을 완성한 걸까.

남동생이나 누군가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고, 우연히 조합을 하다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역시 우연하기만 한 일은 없고, 그 역시 필연이었던 건 것인가.

이 의문은 다음 조각 재배치를 통해 증명된다.

운명의 향기가 난다.


소통에는 상상력이 요구된다.

고쳐 적자.


소통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더 센 녀석이 나타났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KakaoTalk_20200424_082122177_07.jpg 사진 속에 숨은 고양이는 몇 마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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