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 해서는 소통하기에 모자람이 있다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쓴다.
로컬에 사는 가가책방의 미스테리한 소통방식(https://brunch.co.kr/@captaindrop/614).
누구의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다"는 말은 제법 옳다.
한 번 알게 된 사람은 꼭 한 번은 도전하고 싶어 진다는 가가책방 챌린지 '디디' 다음 작품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영문자, 그것도 대문자로 'I(아이)'에 한글로 '구'를 배치한 후 하이픈까지 넣었다.
"아이구-"
엄청난 도전작이라고 생각했다.
상상력을 살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떠올려 보자.
특히 두 가지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우선 대문자 I.
소문자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긴 조각과 짧은 조각을 활용해 대문자 I로 만든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이'가 대문자인 부분에서 상당히 깊은 탄식을 느낀다. 몹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절로 전해진다.
다음은 '-' 하이픈이다.
마치 판소리에서 소리를 길게 늘이듯이 여운이 남는 건 물론이고 앞부분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안타까움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그 깊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강조하는 듯이 느껴진다.
해석하자면 "왜 올 때마다 닫혀 있는 거니.", "언제쯤 들어가 볼 수 있겠니.", "문을 열기는 하니.", "불만 켜 두고 어디 갔니." 등등이 되겠다.
처음 책방 문을 열었던 지난 2019년 6월부터 10개월이 지난 2020년 4월까지의 시간 동안 가장 많이, 자주 듣는 말이 "올 때마다 닫혀 있었다."는 말인 건 정말 죄송스러운 일이다.
이번 가가책방 두 번째 공간 공사를 마치고 나면 정말 제대로 약속된 시간을 지켜야겠다.
아이구 이후 첫 번째 도전작은 비교적 명료했다. 효율을 극대화한 조합이랄까.
마음에 찔리는 바가 있어서 그랬는지 '가고'라는 글자를 본 순간 "주인은 어데 '가고' 손님만 홀로 돌아 가는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가가책방 두 번째 공간 DIY 작업으로 책방 이용은 거의 예약자와 책방에 남겨둔 메모의 번호로 전화를 줄 때만 가능한 상태. 닫혀 있다고 발길 돌리지 말고 연락 한 번 주시면 2분 안에 달려옵니다.
저도 손님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요.
당분간 'I구-'보다 센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너무 빨리 깨뜨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상상력의 소유자라니.
"고구마가 나타났다."
지난겨울 가가책방은 난방을 위해 석유난로를 들였다. 난로를 들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연히 고구마를 얻었고, 자연스럽게 난로 위에 고구마를 얹어서 굽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몇 번 고구마를 구웠는데, 그때는 안채에 있는 화덕을 활용했다. 화덕이 태우는 맛이 좋기는 하지만 많이 타버리기도 하고, 재가 많이 묻어 먹기 번거로우며, 불 관리를 위해 여러 번 오가야 하고, 연기 냄새가 배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난로는 이 모든 부작용을 해결해주었다. 그야말로 군고구마를 만드는 완벽한 도구로써의 가능성이 꽃을 피웠던 거다.
"혹시 이 작품을 남긴 사람은 지난겨울 고구마를 맛봤던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물론, 그럴 리 없다. 가능성이 무한히 0에 수렴한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는 있겠다.
혹은 뭔가 고구마를 여러 개 먹은 듯한 갑갑함을 표현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지만 확실한 건, 이 도전자의 창의력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원래 있던 조각에 'ㅁ'을 대신할 나무토막을 더하고 'ㅏ'에 해당하는 조각까지 추가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보통의 경우 어떤 프레임이 주어지면 그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기 쉽다.
물론 프레임이 아니라 어떤 제한된 조건에서 최대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명시된 제한이 없으므로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고 무한히 확장해내는 대담함은 분명 커다란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I구-'에 이어 '고구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우연히 시작된 이벤트지만 이 조각 배치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건 몹시 소중한 메시지다.
책방을 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위함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내가 책방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책방에 찾아주기 때문'에 생겨난다. 좋은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책방을 채워주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거다.
'귀가'는 처음으로 도전자와 마주친 작품이다. 가가책방과 이웃한 화실 소규모의 수강생분을 보내고, 떠나며 '귀가 잘 하시라'는 의미로 만들었다는 설명도 들었다.
귀가라니, 'ㄱ'이 세 개나 들어가서 그런지 '가가'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밤이 깊어가는 이 시간(현재 시각 오후 11시 06분), 모두들 귀가는 잘하셨는지, 편안한 밤이 되기를 바라며.
사실 조각조각 챌린지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전은 이어졌다.
4월 28일 현재, '귀가' 뒤로도 다섯 명의 도전자가 작품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전혀 다른 의도로 결과를 남기고 갔지만 그 역시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됐으니 도전작에 포함시켰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물론 표현하는 수단도 다양해서 끝이 없다.
엄밀히 말해서 여기에 적은 내 해석은 상당 부분 상상에 의존한 결과 생겨난 '오독의 기록'에 불과하다. 실제 조각을 옮긴 사람들 중에는 전혀 도전할 생각이 없던 사람부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의도 없이, 심심풀이를 위해 조각을 옮겼을 수도 있다. 착각은 자유라는 불편의 진리에 입각한 오답 풀이인 거다.
그럼에도 아주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늘어놓은 나의 '상상'은 단순히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반성 혹은 다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방식을 통해 정말 의도하고자 했던 결과를 얻어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소통은 우연한 과정을 통해 극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상상만으로는 소통에 이를 수 없지만 상상하다 보면 소통에 이르기도 한다. 말장난 같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 가가책방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심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책방지기에게 전해졌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 끝날 줄 알았던 로컬에 사는 가가책방의 미스테리한 소통방식은 세 번째로 이어지게 됐다.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그건 미스테리로 남겨두고, 내일을 위해 오늘은 그만 쉬기로 한다. 모두 모두, 편안하고,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