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가가책방

가가책방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by 가가책방


꼭 1년 전이다.

어렵게 찾은 공간 DIY 작업을 시작하며 벽지를 뜯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다섯 평이 안 되는 공간에서 뜯어낸 벽지가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4개를 가득 채웠던 시간.

한 겹, 한 겹 벽지를 뜯어내는 동안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던 시간.

벽지제거3.jpg 가가책방 1년 전

1 년.

'고작'이라는 단어로 수식해도 이상하지 않은, 짧다면 몹시 짧은 시간을 까마득히 멀게 느낀다.

예전에 어떤 공간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어진 지금 가가책방 모습만큼이나 매일 접하는 일상도, 살아가는 환경도 달라진 영향이 크다.


가가책방을 만들면서 바라던 "가가책방이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이었으면."하는 마음은 거의 이루었다.

만든 지 1년이 안 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오래된 공간에서 느낄 법한 감각을 발견해 주었다. 공간을 기획하고 만든 이에게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셈이다.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 오래되고 낡아서 낯설지 않은.

지난 1년은 곳곳에 숨겨둔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아쉬운 날도 많았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하지 못해서 느낀 아쉬움이 많았다.

어떻게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이야기를 남겨야 하는지 미숙하고 미흡한 부분이 손끝에 박힌 나뭇 가시처럼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코로나 시대.

세계가 코로나로 시름하는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더 강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시기.

가가책방은 처음 공간에 더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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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서서, 컨시어지 데스크 DIY 페인팅

1년 전 가가책방을 만들던 기억을 더듬어, 자잘한 물품을 구매했고 큰맘 먹고 공구도 몇 개 더 들였다.

첫 작업으로 선택한 건 페인팅인데, 그 핑계가 지난번 다른 작업을 하면서 사둔 페인트가 있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려면 목재와 철재를 사야 한다. 사실 한참이나 미뤄왔는데 이제는 정말 시작할 때가 됐지 싶다.


반죽동 247 카페 마스터는 나를 보며 "항상 작업을 하는 듯하다"라고 했는데, 돌아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로 늘 뭔가를 만들거나, 칠하거나, 고치거나, 바꾸고 있었으니까.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제법 여유를 부리며 작업하고 있다.

이 시대가 금세 끝나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기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쉬는 걸 잊지 않으면서.

KakaoTalk_20200323_194054208_01.jpg 가가서서, 전면 컨시어지 데스크

아직 제대로 된 조명은 없지만 공간 전면은 처음으로 업체에 의뢰해 만든 맞춤 선반으로 채웠다. 나머지 작업은 DIY로 진행할 예정이고, 가가책방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에 완결된 공간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계속 조금씩 더하거나 빼게 될 거다.


이 공간이 만들어지면 가가책방 운영 방식도 달라질 예정이다. 가가책방에서 직선으로는 1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아서 잘만 하면 유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로컬에서 지내기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는 누군가는 마음먹고 떠나야 닿을 수 있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거다.

꽃도, 풀도, 하늘도, 빛과 그림자마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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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책방이 좋아하는 꽃과 빛과 그림자

지금은 아직 코로나 시대.

자꾸만 멈추는 시간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동물.


가가책방은 잘 지내고 있다.

1년 후, 다시 오늘을 돌아볼 때에도 이 말을 적을 수 있기를.



공주에서, 가가책방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디에 있든 잘 지내길 바라요.
그리고 언젠가, 공주에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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