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첫돌 축하해, 우리 고운아.

by 가가책방

고운이는 태명이다. 고운 하루, 고운 밤, 고운 시간, 고운 마음, 고운 사람 할 때 쓰는 그 고운이라는 이름을 열 달 동안 불렀다. 아직 심장 뛰는 소리를 듣기 전, 그러니까 의학적으로는 '인간'임을 인정받지 못하던 날에도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을 거다.

정식으로 이름을 짓고, 출생등록을 마친 후에도 한동안 고운이라는 이름을 같이 불렀다. 지금은 이름을 부르지만 조금 더 자라면 다시 부르고 싶은 이름도 고운이다.


1년 전 이 시간을 잠시 돌아본다. 아마 아내는 마취에 들어간 뒤였을 거다. 아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전달받고,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을 즈음이겠다. 본 진통이 시작되고 세 시간쯤 됐을까, 불규칙적으로 심박이 약해졌다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다. 의사는 제왕절개를 권했다. 비슷한 사례를 봤을 때 지금을 견딘다고 해도 태아에게나 산모에게 좋지 않고 결국 수술하게 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한 번 더 지켜보자고 했다. 운동하고 걸었던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그러자고 했다. 기대와 달리 같은 현상이 이어졌다. 의사는 수술이 늦었을 때 태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닥치게 될 위험을 알려왔다. 태변을 먹거나 하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중에 들으니 아기가 어깨에 탯줄이 걸쳐 있었단다. 그런 탓에 내려오려고 할 때마다 탯줄에 걸려 심박이 약해졌던 거라고. 결국 수술하게 될 거라는 의사 말은 조금의 과장도 없는 사실 전달이었던 셈이다.


수술실에 들어가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간호사가 흰 강보를 두른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퉁퉁 부은 얼굴에 붉어진 피부, 잔뜩 찌푸린 미간을 잊을 수가 없다. 왜 나를 세상에 내놓은 거냐는 불만인지, 왜 이렇게 늦게 내놓았느냐는 항의인지, 그도 저도 아닌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사실 표정의 의미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믿기지 않았다가 최선의 표현이었으니까.


코로나 시대에 태어났기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신생아실로 들여보냈다. 푹 꺼진 배를 보고 만지며 아기가 뿅 하고 나타난 것 같다면서 얼른 실감하지 못하던 아기 엄마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지만 여러모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아기를 들여보내고 삼십 분도 더 지난 후에 아내가 나왔다. 몸이 차고, 얼굴이 창백했다. 아기보다 아내를 볼 때 더 눈물이 났다. 온갖 고생, 고통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나누고 함께 하려고 마음먹었어도 나눌 수 없는 시간이며 힘겨움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므로 조금 안도했달까.


말끔하게 씻고 나온 아기는 눈을 간신히 뜰까 말까 했다. 확인을 위해 내놓은 왼쪽 다리가 몹시 가늘고, 약해보인 반면, 신생아답지 않게 풍성한 머리카락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정확히는 그랬을 거라는 기분이다.


수술 다음 날 첫 모유수유를 배웅하고 대기하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엄마에게만 허락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최초의 은밀한 교감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홀로 처음 아기를 만났던 시간에 대한 미안함을 덜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시대라서, 시기가 시기라서 오직 엄마에게만 허락된 밀접 접촉의 시간이었으니까. 나중에 여기 적은 밀접 접촉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기가 묻게 되는 날이 와도 재밌겠다. 이 시대를 어떻게 그려야 잘 전해질 수 있을까.


처음 눈도 못 뜨던 아기는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랐다. 눈을 뜨고,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눈으로 눈을 맞추고, 작아도 너무 작아서 만지기도 겁냈던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고, 고개를 돌리는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 인생 최초라 감동하고 감탄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습게도 아기가 새로운 행동을 하나 할 때마다 '우와'니 '이야'니 '히야'니 '꺄아'니 하는 의미 모를 소리를 냈다. 그게 우리였다.


산후 조리원을 나오던 날 처음으로 아기를 안았다. 이 작고 연한 몸을 어떻게 붙들고 안아야 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차까지 왔는지 기억 못 하지만 무사히 차에 태워 집으로 왔음에 안도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진정한 육아가 시작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는 정말 '응애'하고 운다. 들어보면 안다. 정말 응애 하고 운다. 거짓말처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응애.


두 시간, 세 시간에 한 번씩 깨어 우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토하지 않게 모로 누이고, 두상도 신경 써야 한다. 트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토하는 일도 엄청 잦아서 처음에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당황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조금 무덤덤해졌지만 모든 이변이 이상의 징후가 아닌가 늘 두려움을 한 구석에 품고 지냈다.


친정에서 보내는 시간도 끝나고 정말 세 식구의 시간을 시작하는 날이 왔다. 빠르면 한 시간 사십 분이면 오는 거린데, 잘한다고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우유도 배불리 먹이고 다시 차를 달렸다. 그게 잘하는 짓이었다는 건, 그러니까 잘못이었다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집으로 오기 전에 아기 소식을 궁금해할 사람들 얼굴을 잠깐 보려고 들른 곳에서 일이 터졌으니까.


신고식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으로 건네 안은 동네 삼촌에게 격한 분수토를 뿜어내고 말았다. 원인은, 중간에 먹인 우유다. 처음 차를 타고 장거리를 달린 탓에 멀미를 한 건데, 우린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다행인 건 아기에게 큰 탈이 없었다는 거다. 추억이라면 추억인, 정말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을 안겨준 사건이라 지금도 종종 그날 얘기를 하며 웃는다. 나중에는 아기도 같이 웃게 되겠지.


몇 십일 간, 아기는 먹고 자고 싸고 또 먹고 자기만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새로운 기술들을 익혔는데 고개를 가누고, 목을 세우고, 뒤집고, 웃었다. 그런 아기를 보는 순간은 모든 순간이 놀랍고 비현실적이었다. 너무 현실인데, 부정하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이었다고 하면 역시 모순이겠지.


안는 것도, 트림하는 것도, 우유를 먹이는 것도 서툴던 초보 아빠 엄마도 점점 익숙해 갔다. 하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었는데, 손발톱을 깎는 일이다. 얼마나 작고 여린지. 손톱과 살, 발톱과 살을 구분해서 자르는 과정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했다. 지금도 아내는 손발톱 깎는 일을 거의 내게 맡긴다. 나도 그게 편하다.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


아기는 쑥쑥 자랐다. 머리도 커지고, 손발도 커지고, 키도 자랐다. 옷이 금세 작아지고 넉넉하던 욕조를 못 쓰게 됐다.

좀처럼 보채는 일 없이, 목욕도 좋아해서 잘 씻고, 자주 깨긴 하지만 잘 자고, 갑자기 아픈 데 없이 건강히 잘 자라주었다.


어느 날부터였을까. 어쩌면 처음 공주로 데려온 날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는 동네, 마을이 키우는 동네 아기가 됐다. 아빠나 엄마보다 더 아는 사람이 많고, 삼촌, 이모, 형아, 누나도 여럿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튼 소문난 아기가 됐다.


아기는 정말 빨리 자랐다. 언제부턴가 혼자 앉을 수 있게 되더니 자꾸 배를 밀며 뒤로 가기 시작했다. 다른 아기들이 앞으로 기기 시작할 무렵에도 아기는 자꾸 뒤로 갔다. 그때는 브라운 아이즈라는 가수의 '점점'을 많이 틀어줬는데, 그 행동과 모습이 노래와 잘 어울려서 배경음악으로 적당해서다.


9개월을 지날 무렵, 아기가 갑자기 기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부터 길 줄 알았지만 이제부터 기기로 했다는 듯, 격하고 빠르게.


언제까지나 순할 것만 같던 아기가 부쩍 자기주장이 늘었다. 자꾸 나가자고 보채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울음을 우는 기술도 익혔다. 도대체 누가 가르쳐 주는 걸까?


이렇게 대략적으로 적다 보니 제대로 적어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 년이면 책 한 권 분량의 기록은 쌓을 수 있을 텐데. 찍어둔 사진을 참고하면 벌써 잊어버린 일들까지 다시 떠올려 기록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더 시간이 지나버리면 아주 잊어버릴 것만 같다. 아기의 첫 한 해의 기억이라도 조금 더 상세히 남겨주고 싶은, 다만 내 욕심이라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KakaoTalk_20210623_012834733_01.jpg 11개월, 홀로 서다

벌써 한참 전부터 아기는 혼자 선다. 아직은 벽이나 가구에 의지해서 일어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제는 제법 허공을 짚고도 일어나고 허공 어디를 붙든 듯이 천천히 앉는다. 뒤로 넘어지는 일도 별로 없고, 옆으로 걷는 걸음이지만 기는 것만큼 빨라졌다. 아직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는 듯해서 조심스럽고, 떨어질 줄도 모르고 침대나 소파 위를 기어 다닐 때는 기겁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기는 하나하나 배우고 몸에 익혀간다.


최근에는 BTS를 보며 덩실덩실 춤도 췄다. 그 리듬감이란, 아기들에게는 타고난 흥이 있는 게 아닐까.

처음 본 방탄소년단 춤에 흥겨워 한참이나 엉덩이며 무릎을 흔들었던 아기. 벌써 입덕이니?

KakaoTalk_20210623_002045214.jpg 11개월 1주, 비트에 몸을 맡기다


지난달부터는 '박수'라는 얘기에 손뼉을 치고, '윙크'라는 말에 온 얼굴을 찡그리는 묘한 표정을 짓는 게 가능해졌다. 아기가 단어를 기억하고, 알아듣는 시기는 상상보다 더 빠르다. 고운 말을 써야 한다. 지금보다 더 상냥한 마음을 담은 고운 말들을.


한 달 전에는 책을 잡으면 흔드는 게 고작이더니 이제는 제법 펴보려고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아기야, 너도 책을 좋아할 예정이니?


이틀 전에는 주민센터에서 축하 행사를 열어줬다. 동장님과 통장님과 어르신들이 모여서 선물도 주고 덕담도 적고 가셨다. 모든 아기가 그래 마땅하겠지만 특히 아기가 적은 소도시라 더 환영받고 사랑받는구나. 이 환대와 사랑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보자.


벌써 1년 아기와 시간을 보내며 가장 자주 느끼는 건, 부족한 건 아기의 어떤 면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 아빠인 나의 어떤 면이라는 거다. 아기가 불완전하다고 하는데, 어른이고 부모이며 아빠인 나는 더 여러모로 불완전하다는 걸 실감한다. 매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흔히 느낀다. 이 느낌이 전부 박탈감이나 실망인 건 아니라서 불행하다 느끼거나 슬퍼지지는 않는다. 아기가 매 순간 자라듯, 우리도 나아질 수 있으니까.


아기는 몸이 자라고, 우리는 마음이 조금 더 자라는 시간을 맞이하고 보낸다. 나는 내가 제법 현명한 줄 알았더니 영 헛똑똑이였구나 한다. 터무니없는 헛똑똑이였구나 한다.


나중에 아기가 이 글을 읽고 충격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로지 아기를 위해서 살고 있지 않다. 아기에게 전부 희생하고 모든 걸 감수하고 참아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온전히 마음을 쏟겠지만 나를 지켜내려고 한다. 그래야 나중에 온전한 나로 사는 모습을 아기에게 보일 수 있을 테니까. 그만큼 아기도 자기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른 얘기인 걸 알지만, 늘 바라고 응원하려고 하는 삶의 중요한 지점이라 벌써부터 얘기해 둔다.


이제 아기가 태어난 시간이 멀지 않다.

엊그제서야 알게 된 건데, 하지, 낮이 가장 긴 날이 지난해에도 21일이었다. 낮이 가장 길었던 다음 날 밤을 보내고 태어난 셈인데 문득 그 짧은 밤 사이에 태어나기 위해 얼마나 서둘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한밤 중에 마술처럼 뿅 하고 태어나더니 한 해 사이에 슝하고 자라서 벌써 걸으려고 하는 아기를 보니 놀랍고 아쉬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는 정말 훌쩍 자라 버린다고 하니까.

KakaoTalk_20210623_012834733.jpg 아기와 자기 앞의 생

건강이 정말 중요한 시기에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 충분히 고맙다. 하지만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라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아기야,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올해도 즐겁자.

함께 걷는 날을 기다리고, 함께 달리는 날을 기다리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웃는 날을 기다리며.


생일 축하해, 세상에 온 걸 한 번 더 축하한다.

고맙고, 너무 고맙고, 사랑하고, 너무 사랑한다.


고운 밤,

고운 낮,

고운 나날,

고운 시간.

고운아, 부경아, 사랑해.

민지, 사랑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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