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염이 왔네요, 그런데.
아이가 열이 나서 소아과에 다녀왔다. 저녁에도 진료를 하는 소아과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신기하게 아이들은 해 질 녘에 아프기 시작해서 새벽에 악화하는 일이 잦은데 지난 7월 폐렴 입원처럼 혹시라도 증상이 나빠질까 봐 예방 차원에서 병원 방문을 서둘렀다. 소아과에 도착하면 늘 처음 물어보는 말이 "열이 있었나요?"인데 열이 없을 때는 떳떳하지만 열이 있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오그라든다. 열에 그을린 비닐처럼 조금 오그라든 자국이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아이는 자주 오는 병원이라 여기저기 익숙하고 또래도 많아서 집에서보다 기분 좋게 놀이 공간으로 뛰어든다. 저희끼리 순서를 정하고 자기들 방식으로 놀며 깔깔 웃는데 하나도 아픈 구석이 없는 아이 같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놀이터라도 온 것 같다. 그런 풍경을 보면 조금 안심하게 된다. 그래도 많이 아프지 않고 더 아파지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를 품어보는 거다.
3, 40분쯤 기다렸을까 우리 차례가 왔다. 기분 좋게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 순순히 선생님에게 몸과 귀와 목과 코를 맡긴다. 진단명은 중이염. 선생님은 "중이염이 와서 열이 났구나"하고는 "그런데"를 이어 붙인다. 요즘 소아과에서 일등 하는 병이 '아데노 바이러스'고 이등이 '코로나'인데 둘 다 열을 동반하고 쉽게 폐렴 등 호흡기로 진행될 수 있어서 세심히 지켜봐야 한다는 거다. 기침이 심해지거나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내원하거나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도 보탠다. 중이염이라는 말에 안심하면서도 아직 방심할 수 없다는 마음이 아이를 향한 안쓰러움을 더한다.
중이염은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보다는 더 익숙하고 흔한 증상이다. 하지만 완치까지 시간이 걸리고 항생제를 꾸준히 먹어야 하며 재발 위험이 커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당연히 큰 병에 걱정이 크지만 익숙한 병명이라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유난히 식욕이 떨어진 듯했던 이유도 중이염인지 모른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일까, 뭘 하면 잘 먹을까, 엄마의 고민만큼 아빠의 고민도 크다.
대가족 생활을 하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거의 모든 부모가 사회, 경제활동을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 등의 단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맡긴다. 코로나 시국에는 보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부모도 많았고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들은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냈을 거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해야 우리 아이도 건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가 건강할수록, 그리고 안전할수록 우리 아이도 그렇다. 이번에 열이 날 때도 코로나를 염려해서 신속 항원 검사도 했다. 아이는 질색을 하고 울었지만 우리 아이가 아픈 것만큼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어서다. 코로나가 음성으로 나와서 아이의 상태를 봐서 어린이집 등원을 결정하기로 했다.
아이가 아플 때면 안쓰러워서 슬프다. 하지만 걱정거리는 아이가 더 아프면 어떻게 하는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욕이 없는 아이에게 밥을 먹게 하는 게 힘들고, 아파서 나가거나 놀 수 없을 때면 문득문득 보여달라고 보채는 티브이를 어떻게 덜 보여줄 것인지하는 걱정이 뒤따른다.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미디어의 홍수를 헤엄치고 있는 우리인데 어디까지, 얼마큼, 언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평소 건강할 때는 강하게 금지하거나 나가서 다른 걸 하자고 하거나, 어딜 가자는 이야기로 관심을 돌릴 수 있지만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지면 그런 평소의 방법들이 모두 쓸모 없어진다. 게다가 아픈 아이를 보는 부모 마음이 한없이 약해지는 치명적 상황까지 겹친다. 떼를 쓰며 우는 아이에게 쉽게 "예스"를 말하게 되는 거다.
예전, 아이가 없을 때는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여주는 부모를 보며 비난하는 마음이 컸다. 영상에 흠뻑 빠져 정신을 잃은 듯 보이는 아이를 보며 걱정과 염려로 치장했지만 결국엔 부모를 비난하며 우리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일도 적지 않다. 그런 일을 지금은 우리도 종종 한다. 식당에 가서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가만히 앉아 뭔가를 먹게 만들기 위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보여주는 거다. 아이가 직접 조작하지 못하게 하고 내용을 함께 보며 말을 걸어보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편하면서도 불편한 마음. 아이가 아플 때는 그 마음이 최대치까지 치솟는다. 울어서, 몸부림쳐서 기운을 빼지 않도록, 울어서 가뜩이나 부어있을 코와 목을 자극하지 않기를, 혹은 그런 아이를 진정시키고 달래느라 부모가 먼저 지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얼마큼 타협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아내와의 의견 차이, 다툼 역시 아이에게 좋을 수 없다는 것도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아픈 건 아이인데, 부모도 마음도 성하지 않다. 아이의 증상이 전염되어 부모가 더 아픈 경우도 있다. 다른 아이가 건강해야 우리 아이도 건강하고, 아이가 건강해야 가족도 건강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서로 아프고 다치지 않게 곧 지나갈 여름의 무더위와 멀지 않아 찾아올 환절기의 일교차를 잘 대비해야지. 우리 가족이 서로의 건강과 마음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더 많이 가져야지.
아이가 아프면 부모 마음에는 여유가 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픈 아이에게 적절한 대응을 결정하고 조치를 취하려면 부모가 마음에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당황하는 마음이 클수록 단단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이게 참 어렵다. 아이가 아플 때면 아이의 증상에 대처하는 방법만 배우는 게 아니라 아이를 안심시키고 호전을 앞당기는 부모의 마음과 태도도 배워야 한다. 이만하면 많이 배웠을 텐데 아직도 멀기만 하다. 가을이라고 아이가 안 아플리는 없으니 다만 아이가 덜 아팠으면 하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