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우리는 변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별로 낭만적이지 않으므로 빈 말로도 차마 스스로를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못한다. 늦가을의 한기를 머금은 건조한 바람처럼 비슷하게 건조해도 곧 피어날 꽃을 예감하는 봄의 온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 나지만 오늘은 문득 마음 한편이 뭉클해 온다. 가게 한편에 세워둔 환하게 웃는 우리 사진을 보면서다.
뭉클함의 정체가 그때 당신의 예쁨이나 우리의 젊음이 아니라고 하면 의아했을까? 오히려 사진 속 당신의 얼굴을 사랑해 함께 하기로 했던 게 아니었음이 떠올라 뭉클했다고 하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웃는 얼굴보다 웃음과 웃는 마음이 좋았다고 하면 간지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담백한 고백이다. 가장 진실한 마음이다.
별로 못하는 게 없는 편이지만 그렇게 잘하는 것 역시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너무 당연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작은 일에 지치고 사소한 사건에 감정이 날 섰다. 누구나 일기장에 적을 법한 말을 적는 게 싫어 다른 말을 궁리하다 쓰기를 그만두기도 했다. 별로 잘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집착했을까. 그저 마음이 풀렸으면 해서, 잊어버리기 싫어서 적던 게 처음 마음인데 말이다.
그림을 끄적이던 처음 마음도 비슷하다. 눈에 보이는 걸 똑같이 그릴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들여 쓱쓱 하다 보면 '이 정도면 완성이다'싶은 때가 꼭 왔다. 며칠 일찍 그리기를 시작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일단 끝까지 그려보면 된다'며 시작을 부추기기도 했다. 배우는 것도 아니고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매번 그릴 수 있겠다 싶은 걸 고르고 일단 됐다 싶을 때까지 펜을 움직이는 게 좋았다. 매번 생각한 대로 그려져서 만족스럽거나 즐겁지 않아도 드물게나마 계속하는 좋은 마음이 남는 게 좋았다. 몇 주일이나 몇 달을 쉬다 펜을 움직이면 표 나게 굼떠진 실감에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일단 끝까지 그려보자'는 마음이 버틸 수 있게 도와줬다. 보이는 대로, 똑같이, 예쁘게가 아니라서 쉴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오늘 느낀 뭉클함이 그랬다. 처음 같음이 아니라 여전히 좋음이 우리를 붙든다.
무언가에서 손을 놓는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좋아하던 무언가.
즐겨하던 어떤 일.
영원할 것 같던 관계.
변하지 않을 인연.
사실 잘 모르겠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일들을 어떻게 할까.
내 나쁜 습관 중 제일 나쁜 게 설명하려고 들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점이 아닐까 할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라서 뭉클한 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