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거나 무기력하거나
새로운 걸 시도할 때마다 겁이 났다. 잘할 수 있거나 쉽거나 익숙하거나 간단한 일도 그랬다. 담담하게, 별 것 아닌 듯 표정과 몸짓을 꾸미느라 진땀을 뺀 날도 많았다. 나는 겁쟁이, 혼자 숨어 지내는 게 편한 히키코모리였다.
상황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환경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싫은, 곤란한, 당황스러운, 도망치고 싶은.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억지스럽게 단련되어 갔다. 원래 사람은 잘 안 변한다. 하지만 코너에 몰리면 억지로든 잠시동안이든 변형되기도 한다.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인간의 생성과정이랄까. 형상기억합금은 아니라서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지는 못해도 상황이 풀리면 처음 모양에 가까운 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해 왔다. 한 때는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만 지나면, 이 순간만 견뎌낸다면.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이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으리라.
조금만, 이 순간만 지나면 괜찮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삶을 떠나는 사람들, 소세키의 표현을 빌려 적으면 '폭력적인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소망을 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견고하게, 변함없이 들이닥쳐 물러서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건 절망이 큰가, 희망이 큰가 보다 작은 절망이 얼마나 자주 좌절하게 하느냐, 그 절망이 작은 행복을 얼마나 압도적을 짓누르느냐에 있을 것이다. 작지만 잦은 다툼과 마음을 꺾는 절망은 살아있는 삶과 살고 있지 않은 삶과 죽음을 비슷하게 보이게 만든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상태, 그러므로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리 없는 죽음이 편해 보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세 글자로 적으면 무기력이다. 무기력은 삶을 죽음과 다름없는 것으로 만든다. 죽은 채 살아가는 삶. 이 삶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안이라고 생각해 낸 게 굳이, 하지 않음이다. 나는 굳이 하지 않음으로 살아간다. 정확히는 굳이 하지 않음이 살게 한다. 새로운 걸, 모두가 좋아하는 걸, 빛나는 걸, 굳이 하지 않는다. 그게 숨 쉬게 한다. 하지만 굳이 해야 하는 일이 자꾸만, 걷잡을 수 없이, 내 의지의 밖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순간은 눈 깜빡할 시간 정도로 짧은데 그 순간이 지나가지 않는다.
지나가지 않는 순간 속에서는 굳이 하지 않음의 주문이 힘을 잃는다.
길을 잃는다.
이 순간이, 지난 긴 여름처럼, 지난밤처럼 지나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