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면 미생으로 시작해, 미생으로 완성되고 있을 지도
나는 웹툰, 드라마로 보았던 <미생(未生)>을 깊게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이따금 집에서 채널을 돌리다가도 그 드라마가 스쳐가게 되면 잠시 멈추게 된다. 두 번, 아니 몇 번을 봤는지도 모를 만큼 계속 보았던 장면이지만 어떤 대사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잘 아는 장면들이지만 나는 또 처음 보는 것처럼 또 매료되고 있었다.
우린 모두 다 미생이야.
어렸을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제 역할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것이 가족의 관계에서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심지어는 스스로에게도 역할을 찾아나갔다. 소위 '바르게' 살려고 했다. 용돈을 달란 소리도 쉽게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를 시키면 운명처럼 나의 일로 받아들였다. 사람 관계에서도 싫은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지만 나아가는 길을 항상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었고 나는 내가 어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된 해, 1월 1일.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만 커져 있었고 어떤 것 하나 변하지 않았다. 좀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세상 밖으로 더 밀려났을 뿐.
스무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손 놓지 못했던 것 같다. 등록금을 벌기 위함도, 딱히 쇼핑을 위함도 아니었다. 내가 혼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행동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집에서 자라 그 모든 것들이 행복한 고민이거나 쓸데없는 일이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슬펐다. 단 한 순간도 놓아버리질 못했던 내 모습이. 그렇게 내려놓을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짐들이.
처음부터 완생은 없던 거야. 미생 자체가 이미 완성형일 거야.
의무적인 알람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내 모습은 여전히 어색하다. 책상에 앉아 오늘의 일을 적어놓고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마무리해가는 모습을 느닷없이 위로해주고 싶을 만큼 갑자기 외로워졌다. 이렇게 하루를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기분이지만 정작 나는 부족하다는 것이 초라해지기도 했다. 나는 퇴근할 때 꼭 미생 OST 중 '내일'이란 곡을 듣는다. 그 목소리에 나를 기대어 아주 잠시, 다독여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