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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 정 Sep 21. 2015

05. 평범과 비평범의 경계

모두 비평범을 말하면서 평범을 꿈꾸는 사람들

 많이 생각하는 며칠을 보냈다. 나는 어떤 삶을 꿈꿔왔었는지, 그 꿈이 어디까지 실현되고 있는지. 주말 동안 내 발로 다녔던 모든 곳에서 길 대신 나를 밟아보았다.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잠시 주저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말도 나를 어디에 속해둘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최선'이란 걸 다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일기를 쓰는 것을 숙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나는 방학숙제를 할 때도 일기 하나만큼은 밀려본 적이 없었다. 그 날의 기록을 빼곡히 적어놓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림일기에 '기린'을 사람처럼 등장시켜 그 날 했으면 좋겠던 일들, 나 혼자 했었던 일들을 기린친구와 함께 즐겁게 보냈다고 써두었다. 담임선생님도 딱히 내 그림일기에 코멘트를 달지 않았고 그것을 한 권 내내 그려갔다. 글을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이성에 대한 눈이 일찍 뜨인 편이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렵지 않게 가질 줄 알았다. 그 당시 입학도 하기 전에 자주 이야기를  주고받던 선배를 좋아했었다. 주변에 남자가 없어서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나대로 무언가의 '목표'가 분명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내려 갔고 친구들은 내 다이어리에 적힌 소소한 선배와의 에피소드를 읽고 좋아했다. 짝사랑에 슬피 울고 웃고 할 시간보다 그걸 어떻게 써야 할지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소설과 에세이 경계에 걸쳐놓고 꾸준히 써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고 나는 그 어떤 시간보다 내 일상을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흐르고 흐르던 사이, 나는 어른 비슷한 어중이가 되어있었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잘 읽지 못하는 무언가에 쫓기듯 전전긍긍하는 머리 큰 학생. 첫째라는 이름을 가지고 스스로 무거워진 모자란 딸. 나보다 남을 더 크게 안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주 여린 사람. 최선보다는 '보통'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특별함'을 말하면서 '평범'을 바라던 시간들이 급박하게 흘러 나도 모르게 사무실이란 공간 속에 섞여있었다. 내가 꿈꾸던 하루와는 달랐지만 늘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마음과 내가 다 안고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헤쳐나갔던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그러다 문득,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때? 즐겁고 행복해?


차마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에게도 그런 질문조차 던져본 적 없던 나였다. 누구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핑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목표의 실현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능동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모든 선택들이 사실은 아주 수동적으로 정해져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평범이라는 이름 뒤에 꼭꼭 숨어서 '비평범'만을 외치고 있던 건 아녔을까. 찡해지는 코끝을 꽉 잡았다. 


나는, 내가 어떤 것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해.
가장 평범한 꿈이지만 가장 이루기 어려운 평범하지 않은 일상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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