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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회복지사입니다만?

복지사 형준씨의 일일① - 사회복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소년

연재글, 부담스럽다. 


연재북 설정 어떻게 풀 수 없을까? 비정기로 돌리고 싶은데


징징거림, 이해주길 바란다. 사전에 키워드 중심으로 콘티를 종종 짜긴 하지만 대부분 즉석에서 바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 그만큼 사실감과 솔직함을 보는 당신들에게 전해주고자.


일이 되면 안 되는데 아직까진 즐거워. 의무감 살짝 더해서. 이번편부터는 필자인 본인의 복지사로서의 에피소드를 집중 연재하려한다. 브런치북 수상..아니 출판 제의라도 받아야할거 아냐. 공중파 출연 포함해서. 




"사람" 그리고 "활자"에 몰입하던 아이


저렇게 말을하면 나와 친한 지인들은 많이들 놀라한다. 사회복지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전공부터 진로까지 쭉 정한 줄 알고. 사실 아니다. 오히려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었으니까.


여기까지는 내가 학부생때부터 실무지가 된 지금까지 외부에 강의 또는 강연을 하면 항상 하던 레퍼토리였다. 이제부터는 조금 깊이 있는, 상세히 다루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어보려해. 용기내서 끄적이는 거니 있는 그대로 보길 바란다.


글은 정말 좋아했나보다. 멋도 모른채 '동화 동시 잔치'에 나가 구연까지 했을 정도니까. 여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컸다. 집안 분위기도 한 몫 했고. 컴퓨터는 있었지만 당시 486, DOS와 윈도우가 공존하던 90년대였다. "응답하라" 시리즈 보면 잘 알거라 생각해. 그러고보니 드라마도 벌써 10년이나 넘었네.  


집안에 잡지와 신문, 책 등이 널려있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지천에 깔렸다고나 할까?그 당시 요즘 말을 빌리자면 "낭만의 시대"였기에 동네에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웃집 간 서로 교류하고 음식 나눠먹고 하는 정이 존재했었다. 밖에 나가 아이들과 공차고 놀고, 숨바꼭질하며 화약총으로 총싸움하던 그런 시절이라 보면 된다.


어린 나에게 관심거리는 지금처럼 태블릿이나 컴퓨터,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사람""활자"였다. 이를 통하여 세상을 조우하였고 평생의 숙원과도 같은 목표까지 세웠으니까. 이해가 안되면 이해 될 때까지 한 책을 반복해서 봤다. 어느정도였냐고? 


"햄릿"을 나는 만화책으로 먼저 접했다. 오필리아의 비극적 사랑 그리고 흥선대원군처럼 일부러 광대짓을 하던 햄릿에 감정몰입을 하던 나머지, 수십번도 책장을 덮었다 열었다하며 머릿속으로 각색도하고 토론도하고 그랬으니까. 스스로 만족되어야 다음 책을 꺼내 볼 정도였다. 그렇게 삼국지, 해리포터, 창가의 토토, 나무, 해변의 카프카 등 장르 가리지 않고 끌리는대로 읽었다. 닥치는 대로는 아니었다. 천천히 음미했다는 게 더 적확하겠다. 


알프레드 노벨 전기를 읽고 인생의 목표가 생기다


귀엽지? 오늘 파트에서는 복지 이야기 없어. 그러니 부담없이 봐도 좋아.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도 한 달에 1권 이상은 꼭꼭씹어 책을 읽는다. 확실히 어렸을 때 생긴 습관은 커서도 가는거 보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맞는 말 같아. 이처럼 착실하게(?) 나의 인격과 습관이 만들어갈 때쯤, 어느 위인전을 읽고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그 이름, 알프레드 노벨


이 분의 위원전도 만화책으로 처음 접했다. 출판사까진 모르지만 전집형태로 나왔던 기억이 나. 분량도 많지 않고 여러번 봐도 재밌었어. 거실에 뒹굴거리며 봐도, 이불덮고 누워서 봐도 매번 내게 색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가장 큰 이유를 굳이 꼽자면..그의 유년시절이 나와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내 몸은 병약했다. 노벨도 유년시절을 거의 앓다시피 누웠었다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건장하게 성장하여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간호 덕이었다. 노벨도 가족과 이웃들의 배려와 도움을 받아 성장했고 우연찮게 실험 중 니트로글리세린을 결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 영웅적 서사는 어린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발명품이 전쟁에 쓰여 사람의 생명을 뺏는 무기로 활용됨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전재산을 기부, 오늘날 노벨상을 만든 기초가 되었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전기의 뼈대다. 그저 멋있었다.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 막연한 동경심도 이때 생겨났고. (노벨의 영향 덕인지는 모르겠지만)나의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탐구욕은 중학교 1학년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과학자가 되겠네"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사실 그것보다 무언가 기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이 더 동했던 듯 하다. 사회복지라는 개념은 커녕, 자원봉사니 자선 혹은 나눔 등 기본 지식조차 없었던 꼬꼬마시절의 나에게 말이다. 믿고 따르던 돌아가신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어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이때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거대하면서도 크나큰 목표를 갖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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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크나큰 목표와 꿈을 갖게 된 문학소년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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