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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회복지사입니다만?

복지사 형준씨의 일일② - 읽는 게 그저 좋았던 아이

날씨, 무지하게 덥다.


아직 장마도 안 왔건만, 벌써부터 이럼 곤란해.


참고로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방"에 없다. 작은 선풍기 1대, 긴 선풍기 1대로 버티는 중이다. 이 글도 방금 집에와 땀 뻘뻘 흘리며 쓰고 있고. 


멈출 수는 없다. 어느새 나의 일상 속 패턴으로 자리잡았으니까. 근데 그건 있어.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글이 더 잘 써진다는 사실. 부정할 수 없다. 카페가서 작업해야하나 앞으로..




읽는 게 그저 좋았던 아이


원래 지난화에서 다음편 예고를 '그렇게 크나큰 목표와 꿈을 갖게 된 문학소년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방황'이라고 적었었어. 근데 이 이야기를 빼놓고 바로 들어가면 뭔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미뤘다.


이 점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시작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읽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어렴풋이 따져봤을 때 "4살"로 추정된다. 그때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뭐, 그 전에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흥미나 관심은 있었겠지. 근데 우리 가족을 비롯한 이웃들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았던 때가 이때였어.


작은 에피소드야. 어머니랑 동네어귀를 지나던 때였어. 지금은 이사갔지만 평소 인사하고 지낸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지. 아침으로 기억하는데 그 아주머니랑 만나자마자 곧 수다 떠시더라고. 마냥 기다리기 뭐해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중 아주머니 손에 들려있던 '동아일보'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된거야.


1면, 그것도 헤드라인에 대문짝하게 적혀있던 문구를 거침없이 읽었다. 한자도 섞여 있었지만 왠지 익숙해보였어. 그 소리를 우리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들으셨는지 대견하게 바라보시더라고. 상으로 과자 한 봉지 받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 이후로도 신문을 끊기 전까지 학창시절 내내 신문은 계속 읽었었어(중학교때까지였을거야 아마).


잡지든, 신문이든, 만화든, 책이든

읽는 게 그저 좋았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고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현실이 싫거나 우울한 건 아니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스승처럼 날 대해준 아버지가 계셨다. 또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날 사랑으로 대해준 초등학교 3학년과 소식이 끊긴 6학년 선생님도 있었다. 날 괴롭힌 애들 제외한 친구들도 있었지, 맞아.

읽으면서 실제 만날 수 없었던 작가하고 머릿속으로 대화나누는 재미도 있었어. 유식한 말로 그걸 '교감'이라고 해야하나? 시쳇말로 "AI", "ASMR",  "꿀보이스" 이런 개념일테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들려. 중간에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잠시 책장을 덮고 소위 <100분 토론>아닌 토론을 시작하는거지.


누가 그렇게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자동적으로 나도 모르게 나왔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성향상 궁금한 건 못 참기도 했고 책의 내용을 내 식대로 재구성하는 재미에 푹 빠졌으니 읽는 걸 사랑 안하지 않을 수 밖에. 이는 후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또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나만의 무기이자 큰 강점으로 작용하였다.


한 권의 책을 여러번 읽으면서 성장해온 유년 시절. 책도 책이었지만 가끔 아버지가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실 때가 더 좋았다. 어머니는 내 교정 선생님이었고. 초등학교 때 독후감 숙제를 하면 가끔 읽으시고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피드백을 주셨다. 그게 어린 내게는 따끔했지만 그랬기에 오늘날 나의 스토리텔링과 문해력 및 문장력을 기르는 데 큰 윤활유가 되었다.


그런데..이렇게 글에 대한 포부와 꿈을 갖고 조금씩 나아가던 내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올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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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년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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