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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회복지사입니다만?

복지사 형준씨의 일일③ - 문학소년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기)

6월도 곧 있으면 끝난다.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이 또 있었지.


하나하나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중한 후배를 떠나보낸 일부터 내 아이디어를 도용하고자 기관에서 갑질한 일 등. 그 외에도 많지만 굳이 여기다 상세히 남기지 않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니까. 이해한다. 이렇게 글을 올려도 보는 사람들만 보지 뭐. 그래도 상관없어. 한 사람이라도 본다면,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하거나 공유하면 되잖아.




때로는 스승같은, 때로는 친구같은


그게 우리 아버지다. 살면서 다시 우리 아버지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까 싶다. 여느 아버지와는 다르셨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 모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공유하면 다음과 같다.


#똑똑이

아버지가 날 부르는 애칭이다. 어렸을 때,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말하는 습관 때문에 생긴걸까 싶기도 하고. 늦은 밤, 고된 노동으로 피곤하셨을텐데도 내가 달려가 "아빠~"하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 등을 풀어내잖아? 보상으로 500원을 주셨어. 마치 RPG에서 퀘스트를 하는 기분이랄까.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지금도 내 귓가에 멤도는 말 한마디

"형준아"
"똑똑이"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국어국문학, 작가

아버지에 대해 사실 많이 알지는 못한다. 중학교 1학년, 입학식도 못보고 돌아가셨으니까. 짧다면 짧은 기간,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내용을 홍수처럼 알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장례식장에서였다.


아버지 친구들이 토해낸 속깊은 말들, 공통 키워드는 "국어국문학", "작가", 그리고 "글"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과거는 그동안 이정도였거든.


기업에서 간부로 있다가 부당한 처우에 반발 -> 퇴사하고 페인트가게를 차려 밤낮없이 공사일 전전


그 외에도 빛바랜 앨범집을 보면 중동에 가서 일도 하셨던데, 당시에는 왜 눈에 안 들어왔었을까. 좀 더 자주 물어볼 걸, 그래야 나중에 내 자식들에게도 할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구술동화하듯 전해주었을텐데 말이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지금도 내 귓가에 멤도는 말 한마디


#배려, 미소, 듬직함

그러고보니 아버지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일하는 인부들이라고 해야하나? 팀단위로 움직이셔서 그런지 몰라도 몇몇 분들은 기억나. 일단 "유씨 아저씨"부터 그렇지. 거의 아버지의 단짝이라고 해야하나? 술친구기도 하셨고. 나하고 많은 얘기를 나눠보진 않으셨지만 그래도 챙겨주시긴 하셨어.


그 외에도 경원파이프 사장님, 이름은 기억 안나는 아버지와 관계된 분들이 옅게나마 기억나. 아버지하고 크게 싸우거나 트러블을 일으킨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술과 담배를 즐겨하셨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족에게 그 흔한 술주정 한번 안 하셨다. 담배도 나가서 피실 정도로. 물론 술과 담배 또한 고된 노동을 이겨내고 기센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셨다고 생각해.


웃기도 잘 웃으셨어. 영정사진도 살짝 미소짓는 사진이시니까. 눈매도 선하시고. 약간 돌하루방 같은 이미지? 트로트가수 '현철'좀 닮으셨고. 누구에게든 정감가는 분이셨으리라 생각해. 키도 나와 비슷할 정도로 듬직하셔서 의지도 되었다.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일에 최선이며 미래를 대비까지하셨던 분. 그게 우리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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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년에게 닥친 절대절명의 위기, 그리고 방황(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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