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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Mar 05. 2020

둘째가라면 서러운 협박꾼이 되어 버렸다

육아 에세이. 협상과 협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초보 아빠의 가슴앓이

제목 그대로다. 특별히 둘째를 대할 때마다 그렇다. 내가 이리 협박을 즐길 줄이야, 정작 아빠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이상은 협상가, 현실은 협박꾼. 협상과 협박을 넘나들면서 맹자님 말씀대로 선한 성품을 보전하고 확충하기는커녕 오히려 내 안의 사악함을 매번 발견하게 된다. 


(정말 육아야말로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삶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도 하고, 자신에게 넌더리 날 수도 있으니, 육아하는 매 순간 바닥을 치더라도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나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 끝까지 주인공으로서 만족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협상 1 協商
명사
1.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
2. 정치 둘 이상의 나라가 통첩(通牒), 서한(書翰) 따위의 외교 문서를 교환하여 어떤 일에 대하여 약속하는 일. 또는 그런 약식 조약. 조약과 달리 국가 원수나 국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주로 특정 지역에서 친화적 국제 관계를 맺을 때에 행한다.

첫째 랑이와는 대체로 협상의 단계에서 끝난다. 옷을 입히며 등원 준비할 때나 밥을 먹일 때나 여타 투정을 부릴 때면 거래 조건을 내민다.

랑이와의 협상은 대충 이런 느낌?


#1
아빠 : “랑아, 이거 저녁밥 다 먹어야 이따 젤리나 과자 먹을 수 있단다.”
랑이(6세) : (먹기 싫은 표정을 짓다가 곰곰이 생각하며) “음……, 좋아! 그럼 밥 다 먹을 테니 젤리 주세요.”

#2
랑이 : “아빠, 오늘도 괴물 놀이해요, 네, 네?”
아빠 : (몹시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랑아, 아빠가 오늘 많이 피곤하니까, 내일 괴물 놀이하자. 응?”
랑이 : “싫어, 싫어. 난 아빠랑 놀고 싶단 말이야. 아빠는 맨날 컴퓨터로 일만 하고! 우리랑 안 놀고! 흥, 칫, 뿡!”
아빠 : (삐진 첫째 딸을 달래며) “랑아, 아빠가 정말 피곤해서 오늘은 같이 놀기가 힘들어. 대신 내일 아이스크림 먹고 아빠랑 괴물 놀이하자, 어때?”
랑이 : (아빠 팔을 잡고 곰곰이 생각하며) “음……, 좋아! 아빠 피곤하니까 쉬어! 난 아빠가 먹는 포도 아이스크림 사줘요!”


이런 식으로 랑이와의 협상은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편이다. 보상을 통해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내적 동기를 유발하는 것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김수연 작가는 <말 걸기 육아의 힘>에서 기대되는 행동 수정을 위한 보상 제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가 기대하는 행동을 했을 때 받게 되는 보상도 미리 말해 주거나 아이와 함께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행동 수정에는 벌보다 보상이 효과적입니다. 간식이나 장난감 등의 보상을 약속한 경우 나중에 준다고 미루면 부모에 대한 신뢰가 깨지므로 보상에 대한 약속은 아이가 기대 행동을 하는 즉시 제공해야 합니다.
- 출처 : <말 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랑이와 하는 협상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일단 다행스러웠다. 내가 한 행동을 나름 보증해 준 것에 안도했다고나 할까.(자의적인 해석이지만) 내가 랑이와 했던 대화를 살펴보면 보상이 어떤 것인지 미리 말해주고 말한 것은 반드시 약속한 날에 맞춰 제공했다. 그렇기에 랑이와의 협상은 늘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보상을 통한 육아도 여러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하네요. 지나친 물질적 보상보다는 구체적인 칭찬과 같은 심리적 보상이 더 중요하다, 구체적인 기대 행동과 보상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흥정으로 흘러가지 않게 해야 한다 등등 참 많기도 합니다. 육아를 잘하고 싶은 아빠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으니 그저 머리가 아플 뿐입니다……. 이 글의 초점은 ‘협박’이므로 더 이상의 부연 설명 없이 넘어갑니다. 절대 제가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핫.)




협박 2 脅迫
명사
1. 겁을 주며 압력을 가하여 남에게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함. ≒박협1(迫脅)ㆍ위박2(威迫).
2. 법률 형법에서, 상대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생명ㆍ신체ㆍ자유ㆍ명예ㆍ재산 따위에 해(害)를 가할 것을 통고하는 일. 


하지만 둘째 람이와는 협상의 단계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다. 그쯤 되면 이미 거래가 아니다. 둘째의 완강한 고집, 또는 뺀질대는 능글맞음에 내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아무리 조건을 내밀어도 상대방이 듣는 척조차 안 하니 분통이 터지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협박꾼이 되어 마음으로 둘째의 멱살을 쥐어 잡는다.


람이에게는 내가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3
람이(4세) : “빠, 빠, 아크림(아이스크림) 줘!”
아빠 : “람아, 저녁밥 잘 먹으면 바로 줄게요. 아빠랑 밥 먹을까?”
람이 : “시러, 시러. 아크림 줘, 줘!”
아빠 : (짜증이 담기면서 소리가 조금씩 높아진다) “람이, 밥 먹고 먹을 수 있어!”
람이 : “으아앙, 으아아악!” (괴성 작렬)
아빠 : “람이, 너 밥도 먹지 말고, 아이스크림도 먹지 마. 울 거면 방에 들어가서 울어!” (소리 지른다)
람이 : (울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빠를 보면서) “아빠, 짜!”(싫다는 람이 표현) 

#4
아빠 : “람아, 양치질하고 자야지. 양치질 안 하면 이빨 다 썩어서 병원 가야 한다~.”
람이 : (딴청 딴청)
아빠 : “람아, 이리 와, 양치질해야지.” (하도 안 와 잡으러 간다)
람이 : “우히힛, 헤헷.”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아빠 : (간신히 잡아 안는다) “잡았다! 이제 양치하러 가자.”
람이 : “으아아앙. 으아악. 아빠, 짜, 아빠, 짜” (온갖 용을 쓰며 버둥댄다)
아빠 : (버둥대는 람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소리 지른다) “야, 아빠 말 안 들을 거면 여기 왜 있어! 집에서 내쫓는다. 지금 나갈래?”


글이라 많이 순화해서 적었다. 아이스크림 없어, TV 안 보여줄 거야, 심지어 집에서 내쫓는다까지, 다양한 협박 멘트를 둘째에게 자주 날린다. 나보다 더한 협박꾼이 이 세상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원하지도 않은 협박꾼이 되어 둘째에게 겁을 주니, 당하는 둘째가 삐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내가 아빠로서 계속 잘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 그것을 보는 첫째나 셋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다. 형법 제30장 협박의 죄, 제283조 1항을 보면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하는데 단순 협박 횟수만 합쳐보면 무기 징역을 살지는 않을까 싶다. 아까 랑이와의 협상과는 다르게 이미 나 스스로도 좋지 않은 육아의 모습임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말 걸기 육아의 힘>에서도 나와 같은 반응에 대해서 정확히 팩트 폭행하고 있더라…….


체벌이나 정서적 학대는 삼가세요. 훈육은 아이를 혼내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이야기하거나 갈등 상황에서 아이와 협상하는 과정입니다. 즉 부모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아이의 입장을 들어주는 일종의 의사소통 과정이지요. 우리가 어려서 경험한 훈육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부모나 선생님이 야단을 치고 체벌을 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메시지를 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행해졌던 방법이지요. 36개월 이후에는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 말로 훈육하기보다는, 부모가 기대하는 행동을 미리 이야기해주고 부모의 말을 들을 때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지 알려주는 방법이 바람직합니다. ‘때릴 거야’, ‘내쫓을 거야’ 같은 언어폭력이나 아이를 때리는 체벌은 자제하세요. 부모가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은 부모 역시 아이처럼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출처 : <말 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적용해 보면, 랑이와의 협상은 괜찮았지만 람이에게 한 협박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빠가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겠다.




문득 대학에서 공부했던 교육학 중에 행동 수정 기법이 떠올랐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 강조하는 일종의 조건 형성 체계인데 ‘정적 강화’, ‘부적 강화’, ‘정적 처벌’, ‘부적 처벌’의 네 종류이다. ‘정적 강화’는 기대되는 행동을 하면 긍정적인 자극으로 추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고(이를테면, 간식 추가?), ‘부적 강화’는 기대되는 행동을 하면 보상으로 부정적인 자극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학생들이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 면제 같은 것) 반대로 ‘정적 처벌’은 감소시켜야 할 행동을 하면 보상으로(?) 벌(부정적 자극)을 추가하는 것이고(어렸을 때 많이 맞았던 사랑의 회초리!), ‘부적 처벌’은 감소시켜야 할 행동을 하면 긍정적인 자극을 박탈하는 것이다.(공부 안 하면 핸드폰 사용도 같이 금지, 난리 나겠지?) 대체로 정적인 요소에 집중하고, 처벌보다는 강화를 선택하는 것이 행동 수정과 심리 발달 면에서는 긍정적인 것으로 권장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랑이가 밥을 잘 먹어서 젤리를 주는 것은 정적 강화에, 람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아이스크림도 안 주고, TV도 못 보게 하는 것은 부적 처벌에 해당할 것이다. 정적 강화를 계속 잘 받아온 랑이는 갈수록 손이 많이 안 가는 편인데 부적 처벌을 주로 받는 람이는 비슷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정적 강화가 더 좋긴 좋은 것 같다. 아빠는 답답하다. 람이에게 정적 강화를 시도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니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벌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흑)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지영선의 <가슴앓이>의 한 대목이 마음속에 맴돈다. 노래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협박꾼으로서 살고 있는 아빠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마음이 늘 아프다.(글 쓰는 오늘도 한 건 했음) 육아하면서 맞닥뜨리는 아이들과의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오는 말과 행동에는 감정만 자꾸 실리니, 저질러 놓고 미안해할 뿐이다. 예전에 배웠던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육아 서적에서 이야기하는 육아 지식들은 머릿속에 분명 자리 잡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돌볼 때에는 잘 작동되지 않는다. 이러니 협박꾼의 오명에서 언제 탈출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평생 협박꾼 아빠로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비록 협박꾼이지만 그럼에도 그 운명을 극복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 기대감을 갖고 오늘도 가난한 육아의 씨를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협박꾼 아빠를 뛰어넘은 성숙한 아빠로서 기쁨의 함성을 목 놓아 부르게 되리라. 광야만 같이 느껴지던 육아의 현장이 싱그러운 푸른 초원으로 바뀌고, 그곳에서 향긋하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는 것을 곧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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