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해 갈까

사랑, 빛과 어둠, 빛과 어둠 사이

by 날 것 그대로의 나


사랑,

그것이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너 옆에서 내가 행복함을 느끼고 있네 “

“내 옆에서 네가 행복해하는 것이 행복하네 “


우리는 서로 약속한 듯이

이 가치를 서로 공유할 수 있을 때

이 사랑 속에서 빛을 느끼고 빛이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함을 느끼는 것 같아”

“나 때문에 네가 불행해 보이는 것이 불행하네”

로 변해가면서


우리는

상대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나 자신과,

나로 인해 비루해져 가는 상대를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견디는 일이 고통스러워진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랑이 빛에서 어둠으로 이동하는 그 지점은 어디일까.


이 빛과 어둠의 시간 사이가 나는 어떤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서로의 눈만 바라봐도 찬란했고,

손만 잡아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랑을 시작하게 했던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작용이 서서히 잦아들고,

설렘이 더 이상 관계를 자동으로 지탱해주지 않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시점에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리고 그 대화를 어떤 태도로 마주했는지가

이후의 관계가

빛을 향할지, 어둠으로 향할지를 결정한다.


철수는 말했다.

네가 양말을 벗어서 땅에 내팽개치는 게 싫어.


영희는 말했다.

네가 밤늦게 술까지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게 싫어.


철수는 말했다.

그 시간에 일하고 힘들게 들어온 건데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이런 내 삶이 비참하고 싫어.


영희는 말했다.

그런 너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외롭고 쓸쓸하고 싫어.


이렇게 우리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런 네가 싫다. 그런 너의 옆에서 내가 불행하다고 얘기한다”


만약 이렇게 대화해 본다면,?


철수는 말했다.

신고 난 양말은 빨래통에 바로 넣어줄 수 있어?

그럼 내가 되게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영희는 말했다.

적어도 주 1회는 일찍 들어와서 나랑 30분만 함께

시간을 보내줄 수 있어? 그럼 내가 행복할 것 같은데


철수는 말했다.

그러면 나머지 날들에는 나에게 수고했다고 얘기해 줄 수 있어? 적어도 집에서 인정받는 말에 힘이 날 것 같은데


영희는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해준다는 네가 있어서 행복해


철수는 말했다

나도!


자기가 싫어하는 것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면하고

그것을 말해갈 수 있을 때,

그 자리에는 빛의 힘이 생긴다.


부정받지 않는 태도 앞에서

저항감은 서서히 줄어들고,


우리는

사랑의 빛을

계속 밝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