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웃음은 선물 때문이 아니었다.
5월과 12월을 좋아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무서운 달이 되었지만.
합법적으로(?) 선물을 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경조사 비용처리 해야 할 기념일이 늘어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린 시절의 난 선물할 수 있는 기회를 좋아했다. 평소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미활동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
나는 나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으로부터 고맙다, 잘 만들었네 등의 칭찬과 기쁜 미소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물론 내가 받는 용돈이 넉넉했더라면 비싸고 좋은 선물을 구매하고, 예쁜 포장을 했겠지만 나에겐 따로 용돈이 없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엄마에게 그때그때 요청했고 고학년이 되어서야 천 원짜리 한 장, 두 장, 한 달에 만원 안팎의 용돈을 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또래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의 용돈을 받는 것이기도 했지만 분식집에서 200원짜리 김말이 하나를 사 먹을 수 있었고,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불량식품, 구운 소시지와 작은 고기만두 한 컵 정도 사 먹을 수 있었다.
비싼 선물을 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나의 용돈인지라, 물질보다 정성을 쏟기로 했다.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전에 사두었던 각종 색지와 스티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남겨두었던 예쁜 포장재료들을 한데 꺼내두고 골머리를 앓는다. 이것들로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포장할까?
컴퓨터를 켜서 '어버이날 선물 만들기', '크리스마스 만들기 추천' 등을 검색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눈으로 담는다. 내가 가진 재료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하겠지.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나서 가위와 칼도 집어 들고 뚝딱뚝딱 만들기 시작한다. 중간에 피곤하다며 벌렁 뒤로 드러누웠다가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며 원맨쇼 하듯 벌떡 앉기를 반복한다.
완성한 작품을 가지고 뿌듯해하며 편지를 채워 넣는다.
지금은 비록 선물 하나 없이 편지뿐이지만, 어른이 되면 엄마가 원하는 것들 다 사주겠노라 호언장담하는 편지를 말이다.
엄마는 고맙다며 웃었다. 성인이 되고 엄마가 왜 웃었는지 알 것 같다.
어른이 된다고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없다. 돈 걱정 없이 당당하게 카드를 긁지 못하고 한 푼, 한 푼이 아쉬운 게 현실이었다. 현실은 모르면서 원하는 것 다 사준다는 딸의 말이 웃기면서도 고마웠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물건을 찾기 위해 집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여기저기에 보관해 둔 박스들이 보인다. 나의 목적도 순간 상실한 채 이 박스들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박스 안에 있는 것은 샛노란 포장지로 정성스레 감싸진 조그마한 상자. 어릴 적 내가 만들어 선물했던 카네이션 박스였다.
당시에는 명필이라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삐뚤빼뚤 못생긴 글씨로 '엄마, 어버이날 감사드려요' 하는 문구가 보인다. 엄마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선물을 받고도 그저 웃어준 거였구나.
어릴 때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사주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아이의 세상은 점차 넓어졌다.
그 작은 세상에서 0순위였던 엄마의 자리는, 어느 순간 조용히 뒤로 밀려났다.
친구나 남자친구의 생일 선물은 아깝지 않았던 손길이, 엄마의 생일 선물을 고를 때는 가격표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변명이 많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이런 모습까지 알고 있었을까. 민망함과 미안함이 뒤섞인다.
곧 다가오는 엄마의 생일.
다시 한번, 오래 묵은 마음을 꺼내어 선물을 준비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