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교육시스템에서 느낀 진정한 배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학원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다녔기에 엄마를 졸라 학원을 끊고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마친 후 학원으로 곧장 향했고,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학원 앞에 즐비한 분식 포차에서 간식을 사 먹는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전형적인 한국 학생으로 성장했다.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보다 기말고사나 수행평가 성적이 더 중요한 사회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님의 질문에 교실은 조용해지고, 혹시 내 이름을 불러서 질문을 하진 않을까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책만 뚫어져라 쳐다본 기억도 난다. 게다가 종종 질문은 받지 않는다 거나 농담 삼아 학원 선생님에게 물어보라고 하는 선생님도 계셨다.
고3 수험생이 되면서는 좀비처럼 공부했다. 성적 상위권 친구들이 듣는 인강을 따라 듣기도 하고, 성적이 좋은 친구의 노트를 빌려 보기도 했다(물론 친구는 싫은 내색을 하며 마지못해 빌려줬지만). 공부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대학을 못 가면 인생이 망한다 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명절이면 어떤 명문대에 가고 싶은 지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험생활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면 그런 경쟁적 공부가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은 그냥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술이 허락되는 고등학교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학생들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매일같이 밤을 새운 후 시험을 치기도 하고 강의노트는 공유하려 하지 않았다. 상대평가제도에선 다른 친구가 성적을 덜 받아야 내가 잘 받을 수 있었기에 서로를 경계하기도 했다. 특히 팀 프로젝트 같이 여러 명이서 함께하는 과제는 많은 트러블을 일으켰다. 참여도가 떨어지는 학생을 교수님께 보고하여 팀에서 제외를 시킨다던 지, 성적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조화로운 팀워크가 아닌 한 사람의 독재적인 프로젝트로 끝이 나는 상황도 생겼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교육이었고 영국에 오기 전까진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 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영국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는 직장인의 신분이었고 퇴사 후 열심히 저축한 것을 유학비로 지출한 것이라 수험생활을 떠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게다가 영국은 석사가 1년 과정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기에 공부량이 많고, 졸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을 정도로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영국에 온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하는 내 생활에 비해 어째서인지 친구들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대학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나 스포츠, 예술문화, 토론 등 동아리 활동들에도 참여를 많이 했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은 첫 통계 수업의 과제를 했을 때였다. 과제를 제출 후 친구들끼리 모여 각자 진행한 과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한 친구가 아직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그 친구의 성적이 걱정되어, 혹시 코로나에 걸려서 몸이 좋지 않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어봤다. 그 친구는 웃으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본인의 수학 지식이 다른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짧은 시간 안에 배운 것들을 자신의 학습 스피드로는 전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1주일 정도 제출기한 연장 신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그때 나는 공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모두에게 어려운 과제인데 어떻게든 제 시간 안에 끝낸 학생들이 있는 반면, 1주일의 시간을 더 받은 학생이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처사로 보였다. 심지어 그 이유가 몸이 아프다던지, 장례식과 같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아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는 나에게 더욱 낯설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평가제도에 익숙한 나의 무의식적 사고였다. 상대평가제도에선 개인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이 나보다 성적을 낮게 받아야 내가 A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시간을 가진 학생이 성적을 잘 받을 것이고 그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영국대학원은 절대평가제도이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의 성적은 내 성적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다른 친구들은 심지어 과제를 같이 했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껏 팀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과제를 혼자서 해왔었고, 경쟁 때문에 학생들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의 대학원들은, 적어도 우리 학교에선 수업 시 학생들끼리 같이 팀을 이루어 문제를 풀거나 토론하도록 하였고 과제나 논문에서도 협력을 독려하였다. 물론 표절이나 부정행위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지만, 함께 아이디어 구상 및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너지를 낸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수업 분위기 역시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강의는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국에선 수업 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강의가 마친 후 몇 가지만 추려서 교수님께 따로 여쭤보았고 그마저도 하지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강의 도중에 어렵거나 궁금한 부분은 학생들이 그때그때 손을 들어 질문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심지어 교수님이 가르쳐준 방법론이나 공식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교수님도 ‘수업이 끝나고 따로 질문을 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고 좋은 질문은 모두가 알아야 할 점이라며 칭찬과 함께 더 깊이 알려주셨다.
이러한 경험들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영국 교육시스템에서 받은 인상은 성적보다는 배움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나아가 학생들 개개인의 학습 속도나 성향도 인정해준다는 것이었다. 주변만 보아도 학생들은 모두 무언가를 배울 때 글을 읽고, 이해하고, 응용까지 하는 속도가 제각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이점을 인정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배웠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배웠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성인 ADHD나 난독증 등 학습 시 비교적 시간이 더 필요한 학생들도 당연히 제출 기한 연장 신청을 할 수가 있었다. 성인 ADHD나 난독증은 전 세계 학생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학습장애인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연장을 요청하지 않을뿐더러 허가를 받은 사례도 찾기 드물다.
수업 역시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으니 더 기억에 오래 남고 이해 속도도 빨랐다. 또한 공식이나, 원리를 주입식으로 외우는 것보다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데이터와 활용해서 적용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모든 수업은 학생에게 연구의 재료, 주제, 진행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여 관심 있는 연구를 직접 해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
한국과 영국 교육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개개인의 선호도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영국 대학원에서의 경험은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새로 정립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