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혹하면 안 되는 이유
집 근처에 이케아가 있어서 자주 놀러 가는 편이다. 본격적인 가구 쇼핑을 하러 가는 건 아니고 놀이 삼아 나들이 삼아 기분전환 삼아 간다. 평일엔 무료로 커피도 한 잔 주고, 갈 때마다 구경할 물건들이 넘쳐서 아직까진 질리지 않는다.
보통은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스웨덴 산 초콜릿 한두 개 정도 들고 오는 게 전부지만, 가끔 소소한 물건들을 충동구매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 사 온 가위도 그런 물건이다. 충동구매를 했다는 건 처음 본 물건을 그 자리에서 사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인데, 사실 내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돈이 넉넉했던 적이 별로 없어서 무엇 하나를 사더라도 몇 번씩 찾아보고 심사숙고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이케아에서 가끔씩 충동구매를 할 수 있는 건 역시 가격 부담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2,900원짜리 북엔드도 가벼운 마음으로 사서 아주 잘 쓰고 있고 3,000원짜리 나무 판도 고민 없이 사서 안 보는 책들과 함께 침대 옆 협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일할 때 3만 원이었던 조명도 쿨하게 사와 방 분위기를 확 바꿨다. 이케아 물건들은 대체로 큰 고민 없이 사도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품질이라 좋다. 심지어 5개에 4,000원 하는 판 초콜릿도 꽤 맛있다.
아마 이번에 산 가위에 처음으로 실망한 것 같다. 가격은 3,900원. 부담이 없었다. 시크한 올블랙. 매력 있는 디자인이었다. 마침 문구용 가위가 없기도 해서 즐겁게 사 왔다. 아 그런데 이 가위, 뻑뻑해도 너무 뻑뻑하다. 가위질 한 번 하려면 생각보다 큰 힘이 든다. 손잡이 크기도 애매해서 조금만 가위질을 해도 손가락이 아프다. 성능만 따지면 문방구에서 파는 천 원짜리 가위가 훨씬 부드럽고 나을 것 같다. 디자인에 혹해서 샀더니 품질이 배신한다.
새삼스러운 교훈이긴 하지만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외양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질의 중요성에 미칠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 더 신중한 소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격이 저렴하다고 함부로 지갑을 무장해제할 것은 아니다. 당분간 '이케아 가위 같다'는 말은 이번 교훈을 새기는 나만의 관용구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저 가위는 연필꽂이에 들어가 이미 반쯤 관상용 가위가 되어 버렸다. 이케아 가위 같은 이케아 가위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