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사와 새로운 산책로
며칠 전 유자는 난생 처음 이사를 했다. 본격적인 이사는 아니고, 걸어서 한 시간쯤 걸리는 옆 동네로 잠시 옮겨왔다. 심지어 몇 개월 뒤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임시 거주지 이전이다. 그래도 유자에겐 살면서 가장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완전히 새로운 공간, 낯선 산책로, 익숙치 않은 화장실에 잘 적응해줄지 걱정스러웠다. 매일 보던 부모님과 남동생도 한참 못 보게 되니 불안해하면 어쩌나 싶었다.
기우였다. 화장실 때문에 이삼일 고생하긴 했는데 그것도 큰 문제는 안됐다. 오히려 집에서보다 덜 짖고, 잘 쉰다. 안 보이는 가족들을 기다리는 낌새도 없다. 오히려 엄마랑 아빠가 유자 잘 있냐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보고 싶은가보다. 집에서 제일 귀여운 존재가 사라졌으니 그럴만하다. 아마 지금 우리집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을까.
반면 이 동네의 밤은 조금 더 떠들썩해졌을 것이다. 덜 짖는다고 해도 새벽에 한 두번 짖는 일이 있어서 새로운 옆집 이웃께는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나처럼 잠귀가 어두운 분이시길. 대신 낮에는 유자 덕에 동네가 더 화사해진다고 하면... 너무 팔불출같은 소리지. 그렇지만 요새 유자가 전에 없이 예쁘게 웃고 다니는 건 사실이다.아마 새로운 산책로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처음 걷는 길과 처음 맡는 냄새, 처음 보는 개들이 계속 새로운 자극을 주니까 기분이 좋은가보다. 5~6km를 걷는 내내 표정이 좋아서 산책할 맛이 난다.
요즘은 주로 안양천변을 걷는데, 물가 옆 산책로를 너무 좋아한다. 날벌레가 극성이라 나는 별로 천변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데 얘는 기어이 내려간다. 뭔가 새로운 냄새가 더 많이 나는걸까? 유자는 바다나 강을 본 적이 없으니 물가에 호기심이 생기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정작 하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는 못 건너는 걸 보면 진짜 웃기다. 첫번째 돌은 멋모르고 건넜는데, 흐르는 물을 내려다봤는지 두번째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결국 돌다리는 유자를 안은 채로 건넜다. 어디까지나 물가 옆으로 길게 뻗은 길만 걷고 싶어한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유자의 5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자극적인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 매일 휘몰아치는 변화와 자극을 맞이하는 유자의 자세는, 답지않게 용감하고 침착하다. 여전히 짖기도 하고 물가에서 트러블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의연하게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거처를 옮기고 매일 새로운 길을 걷는 봄. 그런 봄이라면 사람에게도 쉬운 계절이 아닐텐데. 유자 표정에 그늘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 고맙다. 개도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유자가 '다섯 살 때 봄은 힘들었지만 참 좋았지'라고 지금을 곱씹어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