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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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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ug 20. 2016

쓸데없는 보물

버리지 못하는 마음

초콜릿을 먹고 은박지를 동그랗게 뭉친다. 저한테 한 조각 떼어줄까 옆에서 킁킁대던 유자는 초콜릿 향이 나는 은박지 공을 잽싸게 물고 간다. 달콤한 냄새뿐이지만 마음에 드나 보다. 냄새를 맡고 앞발로 굴리다가 옆에 둔다. 이제 버려도 되나 싶어서 가져갈라치면 어김없이 이빨을 보인다. 별 거 아닌 초콜릿 포장지가 유자한테는 엄청난 보물이다.  


쓸데없는 물건을 보물로 삼는 마음. 그 마음만큼은 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 쓸모가 없는데 버리지 못하고 방 한구석을 내준 물건들이 내게도 많기 때문이다. 십 년도 전에 받은 쪽지, 친했던 친구가 주워다 준 솔방울, 다 쓴 향수병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나름의 의미가 있고 기념이 되는 물건들이긴 하지만 그것들의 쓸모없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버릴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좀 더 갖고 있자'라고 결론 내리면 이전보다 버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시간이 쌓일수록 더더욱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지지만 이상하게도 '보물'같은 느낌까지 커져버려서 못 버리고 있다.  


얼마 전에 '잡동사니의 역습'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일종의 수집 강박증 말이다. 집안 가득 물건을 쌓아뒀다가 결국 자기 물건에 압사당한 부조리극 같은 이야기도 있고, 전해주지 못한 선물을 쌓아두며 혼자서 감정의 골을 키워가는 사람의 사례도 나온다. 강박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물건에 의미부여를 한다. 심하게 한다. 떨어져 나온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되는 양 물건을 바라본다. 남들 눈에는 쓰레기에 불과해도, 물건의 주인에게는 마음의 확장된 형태다.


나도 정리를 좀 해야겠다. 강박증까지는 아니어도 못 버리는 물건이 점점 많아지는 게 좋게 느껴지진 않는다. 쓸모 있는 물건만 갖고 살아도 생활이 복잡한데 쓸데없는 보물까지 끼고 사는 건 공간 낭비, 감정 낭비에 가깝다. 정말로 오랫동안 곁에 둘 만한 기념물과 괜히 집착하게 되는 잡동사니를 구분할 때가 됐다. -사실 이런 결심을 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이 은박지는 이제 제 겁니다

은박지 공은 오랫동안 유자 곁을 지키지는 못했다. 다른 간식에 금방 마음을 뺏긴 유자가 은박지 공에서 관심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래, 냄새뿐인 초콜릿 은박지보다는 간식이 백 배 낫지. 다 먹고 나서도 은박지 공을 찾는 낌새는 없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분산시킬 수 있는 마음의 총량이 사람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때문에 소유욕도 적고 집착도 적다. 역시 소박한 삶을 실현시키는 열쇠는 마음을 비우는 태도뿐이다. 유자도 잘 하는데 나는 왜 잘 안될까. 쿨한 유자가 방 정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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