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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IU Jun 11. 2016

그를 부르는 서너 가지 방법

호칭 대타협


"그거 정말 듣기 싫다, 차라리 이름을 불러"


그러게. 언젠가 터질 일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는 있었다.

나는 한때 내 팀장이었던 분을 벌써 수년째 '상무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상무'는 그분의 다른 직장 때 타이틀이니, 내가 '상무님' 하고 부르는 게 그분께는 꽤 난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작 정리했어야 했는데, 내 무심함이자 안일함이 좀 과했다. 하여, 그분이 한마디 하자마자, 나는 냉큼 꼬리를 내리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했다. '오빠'는 물리고, '선배님'을 받았다, 조만간 '님' 때는 조건으로. 그 바람에 나는 요즘 그분을 부를 때 한 템포 머뭇한다. 머릿속 '상무님'을 '선배님'으로 번역하는 데 걸리는 그 한 템포만큼. 호칭, 생각보다 바꾸기 어렵다.   


호칭이란 거, 아무렴 어떠냐, 습관이지 별 의미 없다, 어떻게 불러도, 그저 호명의 기능일 뿐이다 여겼다. 그러다 저 [호칭 대타협]을 계기로, 내 호칭 습관을 좀 돌아봤는데... 돌아보니 말이지, 나는... 타이틀 가진 사람을 타이틀 말고 다른 것으로 부르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없으면, 없는 대로 김선수, 이후배 하는 식으로 타이틀을

지어 붙인다. 격 없어지면 님 정도 떼어 주고, 절친되면 임차, 박본, 권국 같은 약칭으로 부른다. 거기까지다. 누구야, 누구씨, 언니, 오빠 그런 건 내 입에서 나와 본 적이 없다.


호칭은 여기까지! 관계도 여기까지?


저러한 내 호칭 습관은 내가 맺는 인간관계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십수 년 부대껴도, 크게 선 넘지 않고, 딱 여기까지만, 하는 그런 '서울깍쟁이적' 특징을 나는 가졌다.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게 함정!) 몸 사리고 폼 잡을 생각 아닌데, 그리고 내쪽 호의 있고, 그쪽 호의 아는데, 나는 다른 이에게 먼저 트지도 못하고, 다 트지도 못한다. 누구하고나 대체로 친한 것 같지만, 정작 아무하고도 제대로 친한 적은 없다. 25년 함께한 남편하고 방귀도 안 텄으니, 참 각박한 타입인 거다. 정작 젤 좋은 거, 젤 어려운 거는 나누지 못하니, 참 안타까운 타입인 거다.


호칭을 좀 바꾸면, 내 태도도 좀 달라질까?

평생 몸에 밴 태도가 쉽게 변할까 싶지만, '상무님' 대신 '김선배'를 입에서 굴려보는 요즘, 호칭이 먼저 갈 수도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말이라는 게 확정성 같은 것도 있고 하니까, 유한 호명이 유한 관계를 실현할 수도 있지 않겠나? ''김선배'라고 편히 부르면서 고개 돌리고 원샷하면 웃기잖아.


이 참에, 김선배와 나에 얽혀있는 후배들도, 이름으로들 부르기 시작할까 싶다. 석영, 윤희, 선영, 소영 그런 식으로. (아.. 승규는 잘 안될듯...) 이 깐깐한 후배들이 오글거림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타박을 하더라도, 어금니 꽉 깨물고 함 해볼까 싶다. 아예, 은퇴한 선배들을 어떻게 부를지, 이들과도 [호칭 대타협]을 봐 놓을까? 조직 내 위아래로서 말고, 함께 늙어가는 벗들로서의 우리 새로운 관계에 걸맞는 호칭이 따로 있을 테니 말이다.


얼마 전 자칭 '낙향'을 하신 김선배를 방문했다. 뒷얘기가  길지만 후려쳐 말하자면 '미국 친정집'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시골의 식생에 의외로 '무지'하신 두 분의, 낙향지락...아니, 취식안전을 위해서, 동네 식물도감을 만들고 있다





pn. 비생산적인 일을 마음의 불편 없이 맘껏 하자는 것이 올해의 모토다. 식물도감, 딱 봐도 작심하고 비생산적이지 않은가... 흠. (손글씨 진짜 성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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