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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Aug 14. 2022

방콕인 줄 알았는데요, 아니었습니다

학교 주소도 정확히 모르고 유학 온 사람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방콕의 광역도시권 지역 5  하나로, 서울로 치면 경기도, 부산으로 치면 김해 같은 곳이다. 나는 입학할 학교의 메인 캠퍼스가 방콕이 아니라는 사실을 태국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구글맵에서 봤을  방콕 올드타운과 멀지 않았고 의대 캠퍼스는 방콕 내에 있어서, 행정구역 상으로는 서울이지만 외곽에 위치한 강서구나 부산에 속한 기장 같은 곳인  알았는데, 알고 보니 (Province) 달랐다. 학교 주소도 정확히 모르고 유학  사람 나야 


처음 집을 구하러 학교 근처에 왔을 땐 적잖이 당황했다. 외곽도시 특유의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고, 학교의 동쪽 끝 게이트 쪽에서 시작하는 고가도로 앞에는 대형트럭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나중에 교수님께 듣기로는 그곳이 정확히 방콕과 이 도시를 나누는 경계라고 했다. 역시 외곽도시의 특징인 크고 투박한 아웃렛 건물들이 띄엄띄엄 보였고, 곳곳에서 건물 공사가 한창인 한편 아스팔트는 여기저기 파여있었다. 시골이라고 할 순 없지만 묘하게 정비가 안된 풍경, 그리고 아예 화려하거나 주택가가 몰려있는 방콕에 비해서는 조금 삭막한 동네 분위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게다가 그날 날씨는 비가 쏟아져 내릴 듯 잔뜩 먹구름이 껴있었다. 서울 집을 정리하느라 누적된 피로와 출국 전 치아 치료(무려 8개)로 가만히 있어도 하관 전체가 욱신거렸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방콕 중심가에는 모든 것이 밀집해있어서 최소한으로만 걷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데, 이 도시는 뚜벅이에게 너무 가혹했다. 전에 방콕을 여행할 땐 낮에 10분 이상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동네는 이 더위에 기본으로 20분 이상을 걸어야 한다니…! 설상가상으로 학교 근처 콘도에는 가는 곳마다 빈 방이 없다고 했고 학교까지 가는 길도 너무 멀게만 보였다.

 

그날 밤, 방콕의 람부뜨리 로드로 돌아온 나는 심란해졌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이 학교의 여러 면이 좋아서 선택한 건 맞지만 내 선택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를 했나? 역시 방콕 중심에 있는 그 학교에 갔어야 했나? 아님, 깊게 생각 안 하고 바로 태국으로 정해버린 것 자체가 패착이었나? 소용돌이치는 생각(그리고 아마도 호르몬 공격)으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며칠이 지나자 내가 느낀 당혹감과 복합적인 감정에 대해 스스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방콕이 아닌 곳에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공부할 나라로 이곳을 택한 건 사실 태국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방콕이라는 도시, 정확히는 여행하면서 경험한 방콕의 이미지 때문이었으니까. ‘아,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닌데?’ 란 생각이 스치자 그간의 기대와 설렘이 순식간에 팍 식는 느낌이었다. 더해서 그동안 나는 외곽도시에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탄자니아는 예외), 이 도시의 첫인상이 더욱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첫날의 혼돈의 카오스를 뒤로하고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나는 택시를 타고 이 동네로 왔다. 어쨌든 집은 구해야 하니까. 부동산 사이트를 뒤져 중개인 5-6명에게 연락했고 다행히 마음에 쏙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살림살이를 채워 넣으며 안정감을 느끼게 되자 이제 이 동네의 좋은 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방콕 광역권 도시 중 인구밀도가 가장 낮아 도시의 혼잡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당연히 방콕에 비해 땅값이 싸기 때문에 수영장이 딸린 쾌적한 콘도를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딜 가든 나무와 숲, 작은 연못들이 있는 아름답고 거대한 캠퍼스가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다. 앞으로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될 이 동네의 귀엽고 멋진 점들을 하나씩 더 발견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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