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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밍 Aug 19. 2022

경계 너머의 사람들

나를 동남아시아 지역학으로 이끈 지난 시간의 기록

2008년에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을 두 달 정도 여행했다. 처음 계획은 인도를 시작으로 네팔, 파키스탄까지 가보는 것이었는데, 출발 1주일 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와 가족들의 만류로 급하게 행선지를 변경했다. 많은 여행지 중 동남아시아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인도를 여행할 돈으로 갈 수 있는 나라는 동남아시아 정도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만 살아온 내게, 공항을 거치지 않고 걸어서 국경은 넘는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태국이 붙어있는 인도차이나반도는 내 궁금증을 풀어줄 여행지였다. 38리터 배낭을 메고, 한 손엔 2008년 최신판 <론리플래닛: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방콕 & 태국 북부, 중국 윈난(Vietnam, Cambodia, Laos & The Greater Mekong)>을 들고 호찌민으로 향했다.


베트남 남부 도시 호찌민에서 캄보디아로, 캄보디아에서 태국으로, 태국에서 라오스로, 라오스에서 다시 베트남 북부 도시 하노이로 돌아오는 동안, 때로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때로는 국제버스를 타고 다리를 지나, 혹은 정말로 두 발로 걸어서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거대한 공항과 복잡한 입출국 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의외로 싱겁게 국경을 통과하고 나자 머릿속엔 두 번째 물음표가 생겼다. 국경이란 무엇인가? 캄보디아와 태국 사이 국경도시인 포이펫에는 카지노가 몰려있어, 태국에서는 불법인 도박을 하러 캄보디아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줄지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었다. 38선처럼 무시무시한 국경만 알던 스물두 살의 내게 누군가는 고무줄놀이하듯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뿐만 아니었다. 태국과 라오스 사이의 국경도시 중 하나인 농카이 시장은 물건을 구매하거나 판매하러 온 상인들, 혹은 생필품을 사러 라오스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메콩강을 사이에 둔 태국의 농카이와 라오스의 타날렝은 태국, 라오스, 호주 정부의 합작으로 세워진 '우정의 다리'로 연결되어, 한강 다리를 건너듯 국가 간 이동이 가능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국경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라기보다는 얇은 가림막, 혹은 현관에 거는 대나무 발 같은 것이었다.


국경이 얇은 장막이고 그 사이로 매일같이 바람과 사람과 말이 오고 간다면, 그 경계로 구분 지어지는 국가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의 정체성도 하나로 정의하긴 어려워 보였다. 베트남 북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같은 베트남 국민보다 라오스 북부 산악지역의 사람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베트남 북부 박하의 일요시장에서 만난 몽족(Hmong)은 라오스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도, 라오스 북부 쌈누아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베트남어도 라오어도 아닌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했고, 화전농을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나는 국가 사이의 경계란 어쩌면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고, 선 안과 밖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적과 민족이 동의어인 나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2020년, 몽족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소수민족, 그리고 선주민(indeginous people)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존재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지난 9년을 개발NGO에서 일하며 처음 5~6년은 동아프리카 지역 프로젝트를 담당했는데, 최근 3년간은 라오스와 필리핀, 그리고 미얀마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다. 라오스와 미얀마는 공식적으로 각각 50개, 135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리핀의 경우 170여 개의 언어와 민족 분류가 존재한다. 필리핀 프로젝트는 '산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이고롯(Igorot) 민족의 터전인 루손 지역, 그리고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내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모로(Moro) 민족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있는 민다나오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라오스 또한 인구의 70% 이상이 (마을에 따라 최대 90%까지) 소수민족인 북부 산악지역 후아판(Houaphanh)에서 라오어 문해력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이 몽족이었다. 많은 소수민족 언어 중 몽 언어가 라오어와 가장 유사성이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라오스 정부는 수업 언어(language of instruction)로 오직 라오어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외국어로 전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필리핀 정부는 모국어 기반 다언어 교육(Mother Tongue-based Multilingual Education) 정책을 수립하여 교보재를 모국어로 번역하거나 교사가 수업 중 학생의 모국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다(물론 현실에서는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영어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민족적,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소수민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이들에 대한 국가 정책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내게는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 미얀마, 그리고 중국에 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베트남인도 라오인도 아닌 몽족이라 정의하는 이들은 누구이며 이들을 이들답게 만드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한 나라의 영토 안에 살지만 국민국가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국가에게 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내 안에서 물음표가 조금씩 커져갈 때쯤, 태국행을 결심했다. 어릴 적의 내가 단순히 '국경을 넘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동기로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이곳 동남아시아로 왔던 것처럼, 조금 더 자란 내가 그동안 점점이 흩뿌려진 내 경험과 고민들을 선으로 이어 이곳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만들었다. 첫 수업 날 자기소개 땐 지난 3년간의 경험 때문에 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짧게만 언급했지만, 사실 내 나침반은 14년 전부터 조금씩 동남쪽으로 기울어져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주문 같은 말을 믿진 않지만, 선택의 순간엔 각자가 늘 생각하고 있던 무언가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쪽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니까. 내가 쥔 나침반의 N극이 어디로 또 기울지, 그래서 나를 어디로 데려갈 진 아직 모르지만, 지금은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하고 싶다. 단단히 두 발을 땅에 디딘 채로, 하지만 생각은 내 경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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