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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일곱 Aug 02. 2021

오르골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노을은 진해진다.


문득 슬프고 자주 좋았다.


우리는 북악산에 올라가 간결하게 편집된듯한 서울을 바라보았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여기가 바라보고 있는 저기에 속해있는데 안과 밖이 없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두 개의 오르골로 나눠진 것 같았다. 하나는 따뜻해서 마음이 짓물리는 듯했고 그런 나를 위해 반대쪽은 경쾌하게 춤을 춰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오르골의 부속처럼 일제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오르골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노을은 진해진다.


나는 왜, 문득, 슬펐을까


아마도 이유를 백가지는 댈 수 있어서 슬펐을 것이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때론 슬픔보다 더해서.

진짜 슬픈 마음은 아직 한마디도 한 적이 없어서.

모든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 사무쳐서.

내가 받았던 마음을 너무  알아서.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던 순간도 선명해서.

불면이 찾아와도 열심히 받아들이던 어젯밤이 생각나서.

그래도 견딜만해서.


다시 바라본 서울은 손바닥 만했다. 색종이를 접듯 깔끔하게 반으로 접으면 서로의 머리가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가까웠다. 그녀가 말한다. 저 안에 있으면 이곳과 저곳이 반대편 끝자락 같고 구만리 같은데 멀리서 보면 이렇게 가깝고 직선이라며, 네가 그렇다고. 걱정말라고. 나는 이 이야기가 내심 좋았다. 아름다운 것은 비유에서 나온다. 비유는 어렵지 않고 곱씹을수록 찬란하기만 한 것. 비유가 위로가 된다.


그림 같은 야경이 마음 한 곳의 공허를 만지지만 또 한편엔 충만함도 채워주었다.

문득 슬퍼도 자주 좋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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