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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물일곱 Jun 04. 2021

인간도 햇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광합성이 별거인가.

어제는 상담을 다녀왔다.  번째인지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끝을 모르는 것도 낫겠다 싶어서 회차를 굳이 세진 않았다. 사실은 마음이 많이 괜찮아져서  말이 없었다. 회사 때문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업무적으로 조금이라도 핸들링이 되니 스트레스도 금방 사라졌다.

언제나 평화로울  없겠지만 심장도 몸도  무너져갈 만큼 컸던 스트레스가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이 괜히 호들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인생을 컨트롤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살고 싶어서 상담을 가기 전에 문제점을 계속 다이어리에 적어내렸다. ​


키워드가 여기저기서 날라왔다.

어떤 주제는 예술을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같다고 말하며 시작되었다.

나의 눈은 높아져가고 손은 게을러지는 마당에 마음은  이상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고, 이제는 긁어먹을 내용물도 없는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언갈 자꾸 만들고 싶은데 기술도 열정도 따라가지 않는  같다며 치기 어린 불평을 한참 늘어놓았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마를 짚었다가 내가 이해가 안 간다며 손도 휘적휘적거리며 투덜거렸다.

선생님은 그저 가만히 웃으시다가 운을 떼셨다.


"--, 방금  회사 얘기할 때와 전혀 다른  알아요? 투덜대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고 너무 좋아한다는  느껴져요."

(정확한 말은 기억을 못한다)


어디 하나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었다.


그랬다. 목소리가 힘이 생기는 구간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얼마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있었다.

싫다고 아무리 투덜거려도 남은 애정이  자리에 있다. 사실은 본래의 진심. 알아채지 못했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소리.​


자칫 자위가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같았다. 피아노를 7년간 다니고 있었고, 느려도 가끔씩 무언갈 만들고 있었던 나에게 사랑하지 않으면 이럴  없다고 하셨다. 대신 직업적인 기준을 넣지 말고 그저 계속 투덜거리고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꾸 완성을 시켜야하고 자꾸 잘해야 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울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나 자신이 느껴졌다.


마음 한구석이 녹는 것 같기도 했고.

슬픔은 유형적이고 행복은 무형적이다.

우울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즐거움은 포만감 같아서 공기처럼 흩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에서 예술을 얻는 습관을 가지곤 한다. 그게 쉬우니까.

슬플  많은 영감을 얻는  맞다. 모든 감각이 열려 세상이 모두 절절하게 느껴지는  어떡하나.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3  모든  적당히 치유되고 나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특별한  알았던 이야기가 세상의 하나쯤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나만 힘든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깨닫고 나니  이상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았다. 소재거리가   없다는 말보다는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소리칠 필요가 없었다. ​


아프지도 않는 나는 그래도 무언갈 만들고 싶었던  같다. 하지만 세상의  무엇도 길게 이야기할 만한  없었다.

자극으로 오지도 않았고 메시지를 주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의 부조리함과 사회적 메시지를 다룰 만한 이야기를  가지 보았지만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이슈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철저히 외면했다. 남이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지키는 것조차 벅찼다. 여기선 적당히 역할을 하다 얼른 집에 가는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엮이는 만큼 상처를 받는  당연했고 동시에 부족한 사회성에 비해 사람을 좋아하는  자신 또한 발견해버렸다.

인간이 너무 싫었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너무 좋아서 싫었다. 너무 미운 만큼  누구도 혼자 돌려보내기는 싫었다. 혼자 가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챙길지언정 상처받는 사람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오만 상처는 혼자 받았다.

우리 집고양이처럼 그래도 잘해주면 마음을    열어젖히곤 했다. 미숙하고 호구 같아 보여도 그게 나였다.  안고 싶고 이 되고 싶었다.

한동안 자막이 달린 팝송에 혔다. 번역이 그런 건지 언어가 그런 건지 직설적으로 사랑한다고하고 힘을 내자고 말하는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비유를 좋아하는 나지만 때로는 간단한 단어  개가 발을 구르게 만들었다. 외국어를 모르는 무지가 주는 경쾌함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고 싶은 얘기가 거기에 있었던  같다. 다들 사랑해야 한다고, 미워하지 말자고, 그래도 일어서고, 세상을 정복하자고. 시니컬이 주류가  요즘 세상에   어딘가 한쪽이 말려 들어갈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삶은 단순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장르가 바뀌어도 결국 모든 예술은 하나를 외치게 된다. 외롭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많이 웃는다면 인간도 햇빛을 만들어낼  있다. 광합성이 별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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