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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Nov 26. 2023

걱정도 슬픔도 없이 다시 일상으로

가족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비슷한 주제의 책은 손이 잘 안가게 됐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족에 대한 글들은 결국 하나같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극한의 갈등으로 치닫는 시기를 지나 결국 허무하게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글, 드라마, 영화들은 그렇지 못한 나를 무겁게 옥죈다. 꼭 나만 천하의 몹쓸년이 된 기분이다.

용서가 그리 쉽다면 참 좋으련만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쉽지 않은 것은 한번도 가벼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깊이 사랑했던 만큼 그들에게 받은 상처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마음을 주고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사랑했음에 결코 거짓이 없다.

내 마음이 진득하고 무거웠기에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내 부모와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것도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어느 날은 엄마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가 어느 날은 엄마에게 참을 수 없는 울분을 속으로 삭히기도 했다.


왜 나를 그때 그렇게 내버여 두었느냐고.

왜 나를 아빠에게서 보호해주지 않았느냐고.

왜 그 어린 아이에게 참으라고만 했느냐고.


반면 타협하고 싶은 시간도 있었다.

이 무거운 돌덩어리를 그만 벗어버리고 싶은 까닭이다.

부모를 등졌다는 죄책감은 내 마음 한구석을 어둡게 만들었다.

그곳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처럼 언제나 축축한 슬픔이 넘쳐 출렁거렸다.


인과응보라 여겼지만 부모의 쓸쓸한 노후는 안타까웠고, 늙어가는 부모를 들여다보며 돌봐주고 싶은 마음 또한 나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명절이나 생일처럼 특별한 날이면 무거운 죄책감에 며칠동안은 온 몸이 물에 젖은 것처럼 착 가라앉았다.


그러게 조금만 나를 인정해주지.

한번이라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지.

한번이라도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었더라면 나는 당신들에게 등돌리지 않았을 텐데.


사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시간이 지나면 나도 가족과 화해를 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내 분노를 모두 쏟아내고 나면 나에게도 부모를 마주할 용기가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4년이 흐른 지금도 내 마음은 여전히 파도가 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들이 내 감정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기 보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누구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것.

그리하여 고요하고 잔잔한 날이 내 인생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 가족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강요한다.

자기들은 변했다고, 너만 마음을 돌리면 된다고.

자기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지금 너가 행복한 것도 다 자기들 덕이라고.

자기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냐고.


얼마 전 올해 처음으로 만난 엄마는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내 마음을 돌리는 게 목적인 것처럼 앉자마자 이제 그만 마음을 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빠한테 한번만 숙이면 되는데 그걸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엄마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40년을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도 없이 빌었다.

내가 그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 내 존재자체가 그 사람에게 죄송한 일이었을까?

나는 그 긴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나왔다.


"나한테 와서 사과하라고 해. 그럼 생각해볼게."

  

엄마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40년도 모자라 이번에도 엄마는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한테 그러는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분노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헤어질때까지 엄마는 집으로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엄마를 돌려보냈다.

할말이야 많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처음으로 엄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엄마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지 않았다.

걱정도 슬픔도 없이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단단해지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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