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8kg이 나가던 이십 대에는 H라인 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저 몸무게를 유지한 건 내 인생 통틀어 3년이 될까 말까... 살면서 가장 날씬했던 이십 대 후반에서 서른 살 즈음에 많이 입고 다녔는데, 어쩌다 보니 70kg이 넘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옷장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었다.
H라인 스커트는 몸매가 잘 드러나 여성미가 물씬 나서 좋았다. 운동화와 같이 입으면 캐주얼하고, 구두를 신으면 커리어우먼 느낌으로 직장인룩으로 이만한 옷이 없다.
여자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언젠가 살을 빼서 입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옷이 옷장에 몇 벌씩은 있다. 이 스커트도 나에게 그런 옷 중 하나다.
살이 쪄서 입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미련 가득한 옷. 결혼을 할 때도, 이사를 갈 때도 꾸역꾸역 이 스커트를 챙겨 넣었다.
그렇게 5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간혹 꺼내서 입어볼 때도 있었다. 흘러넘치는 뱃살을 구겨 넣고 결국 잠기지 않는 지퍼를 반만 올린 채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쓸어내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마도 다시는 이 치마를 입는 나를 볼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헌 옷수거함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었다.
웃긴 사실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한 번도 마음껏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케이크를 죄책감없이 흡입한 적도 없고, 야식을 신나게 먹은 적도 그렇게 많지 않고, 평소 먹는 양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살은 당최 빠지지 않았다. 단 3kg도 빼기가 힘들었다. 언젠가는 3개월 동안 운동을 매일 했음에도 몸무게가 전혀 빠지지 않아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홧김에 케이크 한판을 퍼먹었다. ‘다짐하고 좌절하고 폭식하고’가 무한루트였다.
돌이켜보건대 내 묵은 지방의 결정적인 원인은 초콜릿과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간 케이크가 아니었다. 야식도 폭식도 아니었다. 내가 살을 못 뺐던 이유는 빨리 살을 빼려고 했던 내 마음 때문이었다.
원푸드 다이어트를 하고, 간헐적 단식을 하고, 주사를 맞기도 하고, 한약을 먹기도 했다. 부작용이 크다는 양약을 먹고,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운동을 죽어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도돌이표였다. 이 모든 노력을 석 달 이상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속하지 않는 노력은 힘이 없다.
빨리 살을 빼는 방법은 빨리 살을 빼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며칠 전, 그 치마를 다시 꺼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어? 설마...’로 바뀌었고, 울룩불룩 튀어나온 곳 없이 매끈하게 지퍼가 올라갔다. 다만 이제 유행이 다 지나버려 입고 나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행이 지난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가지고 있었던 내가 참 어리석다.
이제는 그 치마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바디프로필 촬영 D-82.
끝까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