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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Aug 18. 2024

그냥 다 때려치울까?

우리 바프 예약 취소할까?


 그날도 참지 못하고 쿠키를 먹고 말았다. 단백질 쿠키라곤 해도 지방이 무려 27g이나 들어있었고, 바프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입에 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쿠키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저항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500칼로리가 넘는 주먹만 한 쿠키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곧바로 자괴감이 밀려왔고 그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요즘 매일 매 순간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보이는 것이 온통 먹을 것들 뿐이다. 아파트 단지 앞 추러스 가게부터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목 꽈배기 집, 그 옆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집, 9900원짜리 피자집, 그리고 갓 튀겨낸 기름 냄새를 풍기는 치킨집까지... 세상에 먹을 게 너무 많다.


 tv는 또 어떤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는 이야기뿐이다. 전국방방곡곡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모자라 직접 음식을 만들고, 먹고, 튀기고 볶고... 오감을 자극하는 먹을 것들의 향연이 tv를 켠 순간 펼쳐진다. 그런 화면을 볼 때면 더욱 배가 고파온다. 분명히 방금 밥을 먹었고 배도 찼는데, 만족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채우고 싶은 건 이런 것들이 아니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맛있는 게 먹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먹을 수 있는 건 닭가슴살과 단호박뿐이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는 사실은 일순간에 사는 재미를 반감시켰고, 참다 참다 먹어버리는 나의 나약한 의지와 마주할 때마다 좌절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 체중과 왔다 갔다 요동치는 체지방 때문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바디 프로필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기분전환할 겸 여행이라도 가면 좋겠지만 어딜 갈 수도 없었다 4시간마다 식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웬만하면 집에서 밥을 먹는 게 식단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침 점심은 밥(130g)을 먹지만 간식과 저녁은 단호박으로 챙겨야 하고 매 끼니 단백질도 20g을 채워야 해서 닭가슴살, 고기, 참치 등을 먹어야 했다. 문제는 내 식단에 딱 맞춘 샐러드집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 샐러드집은 배달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부 취식이 가능한 곳은 말만 샐러드지 예쁘기만 하고 정작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턱없이 부족한 곳이 많았다. 집 근처 카페를 갔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이유다.


 가장 힘든 건 커피다. 하필이면 라떼를 좋아하는데 우유 자체에 당과 지방이 많아서 웬만하면 라떼도 먹지 않는 게 좋다. 그래서 우유를 오트우유로 바꾸었는데, 이것 역시 어느 정도 당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탄수화물 함량까지 꽤 높아서 그냥 안 먹는 게 제일 좋다. 머리로는 다 안다. 다 아는데...  화가 날 뿐이다.


어쨌든 몸은 변하고 있다

 태어나서 가장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몸은 변하고 있다.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통 일자였던 허리에 굴곡이 생기기 시작했고, 태생적으로 작은 골반에 평평했던 엉덩이도 조금씩 라인이 붙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복부와 안쪽 허벅지다. 팬티라인에 늘 겹쳐지던 뱃살이 어느덧 평평해지고 있다. 배꼽 아래로 늘 두둑하게 자리 잡고 있던 뱃살이 조금씩 사라지고 약간의 똥배만이 남아있다. 이제 앉을 때 배 쪽 상의를 잡아 빼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니 감격스럽다.


 뿐인가, 덜렁거리던 안쪽 허벅지 살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눈으로는 여전히 두툼한 허벅다리지만 반바지나 치마를 입었을 때 쓸리는 느낌이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예전엔 양쪽 다리의 살과 살이 쓸리면서 바지가 사타구니 쪽으로 밀려 올라갔다. 이게 싫어서 언젠가부터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치마는 더했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가 쓸리는 통에 여름엔 아예 입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허벅지는 닿아있지만 근육이 붙어서인지 밀려 올라가거나 쓸리는 느낌이 거의 없어졌다. 덕분에 올여름에 반바지를 원 없이 입고 있다.  



 몸은 정말 느릿느릿 달라진다.  너무 느려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분노하고 좌절하다 보면 어느새 변해있다. 그러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 9일 휴가 기간 동안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가봤자 먹을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눈뜨면 헬스장을 갔다. 하체하고 어깨 하고, 가슴 하고 엉덩이 좀 쥐어짜고, 유산소는 달리기로 40분. 그래서 몸무게는? 당연히 그대로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연아퀸의 유명한 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해


그냥 하는 거다.

바디프로필 D-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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