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
라다크 레를 출발해 스리나가르까지 3박 4일이 걸렸다.
‘인류의 잃어버린 낙원’으로 불리는 스리나가르로 간다는 말에 한 여행자는 파키스탄 국경이 가까운 위험한 곳에 왜 가냐며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실제로 스리나가르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등이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내가 북인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장소를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스리나가르행에 힘을 실어 준 건 우습게도 스리나가르에서 온 여행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스리나가르는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결론은 직접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를 출발해 라마유루, 카르길, 소나마르그에서 각각 1박을 하고 4일 만에 스리나가르 시내에 떨어졌다. 오토릭샤를 타고 숙소까지 가는 동안 불교 색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르길을 기점으로 이슬람 문화권이 시작되는데 스리나가르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서 가장 큰 무슬림 도시 답게 이슬람 색이 몹시 짙었다. 이곳은 약 2000년 전 불교의 핵심 거점이기도 했는데 현재는 모스크가 그 위를 덮고 있어 과거 흔적을 찾아 보는 건 불가능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따라 모스크 첨탑 등이 삐죽삐죽 튀어 올라 있고 인종 또한 인도인과 파키스탄 사람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도시 모습만 봐서는 파키스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스리나가르가 위치한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서 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지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복잡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이곳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이슬람 신도인데, 나라는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종교 갈등이 아름다운 스리나가르를 가끔씩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인류애와 평화가 바탕이 돼야 하는 종교가 반목과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이런 비극의 장소 스리나가르는 과거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한 달 호수가 있어 휴양지로 인기가 높았다. 재미있는 건 달 호수 위에 길게 늘어선 하우스 보트의 유례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선 외국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걸 금지했는데 아름다운 달 호수에 오래 머물고 싶은 영국인 등이 이 법을 피해 달 호수 위에 하우스 보트를 만들어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하우스 보트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숙박 형태로 발전했다. 스리나가르를 찾은 여행자라면 달빛 찬란한 호수 위에 떠 있는 하우스 보트에서 하룻밤 머무는 로망을 누가 꿈꾸지 않겠나.
그랬던 스리나가르는 잦은 테러 등으로 현재 여행자의 발걸음이 뚝 끊긴 상황이다. 심지어 스리나가르를 방문하는 건 한국, 이스라엘 여행자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많은 하우스 보트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스리나가르를 찾은 건 아름다운 달 호수나 분쟁지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겐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누구에겐 조금 충격적이기도 누구에겐 조금 황당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스리나가르에 꼭 가야 했던, 그리고 자료를 찾으며 무척이나 흥분했던 이유는 바로 예수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본인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믿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여기서 읽기를 중단할 것을 권한다>
개인적으로 난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예수 사후 300년이 지나서야 성경이 만들어진 당시 로마의 정치 상황을 조금만 공부하면 초기 기독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성경이 만들어질 당시 로마의 상황을 모르더라도 분명한 팩트 한 가지는 13세~29세 사이 예수의 행적, 즉 예수가 성인이 돼 대중들에게 등장하기까지의 기록을 성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미스터리가 있다. ‘예수의 잃어버린 행적’으로 불리는 이 시기에 예수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19세기 말 러시아 학자 등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예수는 13세에 한 상인을 따라 인도에 간다. 이는 당시 유대 율법에 따라 13세에 부인을 맞아야 하는 풍습과 관련이 있다. 예수는 어려서부터 무척 총명해 혼기에 이르자 구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왕성한 지적 욕구를 가진 소년이었다. 결혼보다는 자신의 지적 허기를 채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당시 상황에서 예수 본인의 욕심을 채울 방법은 율법을 피해 오직 고향을 등지는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 도착한 예수는 힌두교 등을 공부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카스트제도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평등사상 등을 설파하다 분쟁에 휘말리게 되고 히말라야 지역으로 몸을 숨기게 된다. 이때부터 불교를 공부하는데 밀교 고승 밑에서 다양한 수행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매우 뛰어난 성과를 보인 예수는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여기까지가 예수의 잃어버린 행적에 대한 요약인데 이런 예수의 어릴 적 기록이 라다크 레 근처 헤미스 곰파에 보관 중인 경전에 소상히 소개돼 있다고 한다.
정리하면 잃어버린 행적이란 예수가 인도에서 다양한 종교를 접하게 되고 불교에 심취했다는 내용이고 심지어 그 기록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무척 충격적 스토리인데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고향에 돌아온 예수는 유다의 배신<사실 이 부분도 유다의 배신이 아닌 예수와 같은 민족인 유대인의 박해로 보는 시각이 맞다>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몇 시간 만에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된다.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이 며칠씩 그대로 방치된 것과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게 십자가를 내려온 예수는 한 동굴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예수가 부활한 게 아니라 소생한 거란 주장이다.
그 뒤 예수는 어머니와 토마<토마가 쓴 복음서는 불교 색채가 몹시 강하다는 이유로 성경에 실리지 못했다. 또 토마는 인도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파했는데 현재 인도 남부지역에 토마 복음을 믿는 400만 명 정도의 신도가 존재한다> 등과 함께 시리아 등을 거쳐 지금의 인도까지 피신하게 된다.
그렇게 예수가 정착해 늙어 죽음을 맞은 곳이 바로 스리나가르고 이곳 구시가지 안에 로자발(Rozabal)이란 무덤이 예수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로자발은 라우자 발(Rauza Bal)의 준말로 라우자는 예언자의 무덤이란 뜻이다. 예수의 인도식 이름은 유즈 아사프인데 바로 로자발이 이 사람의 무덤이란 얘기가 19세기 말 러시아 학자 등이 주장한 내용이다. 현재 유즈 아사프의 후손이 이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로자발을 찾기 전 이런저런 자료를 보고 압축한 내용이다. 사실이야 어찌됐던 부처의 가르침이 앞이고 예수가 그 뒤를 이어간 시간 흐름을 보면 성경에 불교의 흔적이 군데군데 발견된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사실 예수의 무덤을 찾으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았고 진짜 예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시도를 달리 해석하면 예수가 인간이었기에 필연적으로 생물학적 죽음에 도달했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부활이나 소생은 애당초 내 관심이 아니었다. 예수가 신이 아니라면 2000년 전 인간의 평등과 사랑 그리고 박애주의를 설파한 수행자 내지는 혁명가 정도로 보고싶다. 그래서 예수의 본질은 부활이 아니고 그가 남긴 이야기에 있다. 부처의 가르침은 그의 깨달음과 해탈이 아닌 그의 말씀이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중생들에 대한 자비인 것처럼.
로자발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지나가던 청년이 말했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이 말을 하지 못해 몇몇 사람은 내 등 뒤에서 몇 분을 서성였다. 로자발이 구경의 대상이 아니란 거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이 로자발의 벽을 손으로 만지고 그 손을 입으로 가지고 가 키스했다. 매일 하는 일처럼 말이다. 그렇게 예수일지 모를 한 성인은 아직 그들 가슴에 살아 있다.
예수를 만난 뒤 스리나가르에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즈간즈로갔다. 이번엔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다. 마침 일정이 맞아 운 좋게도 4일간 달라이 라마 법회를 들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생각. 환생했다는 부처 달라이 라마를 직접 본 게 본질인지, 그의 말씀이 본질인지. 말씀이 본질이라면 그의 존재에 대해 열광할 필요도 다가올 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필요도 없게 된다. 순간순간 내게 말씀이 멀어지는 걸 한탄해야 하지 않나. 달라이 라마는 비운다는 생각조차 비우는 걸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아무것도 없지 않은 상태에서 본질이 드러난다. 그런데 법회가 끝나고 구름처럼 달라이 라마 주변으로 몰려든 저들은 또 무엇인가. 우상과 영웅은 남고 말씀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게 당신이 원하는 모습입니까? 당신의 말씀은 어디로 갔나요?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당신이 우상이 됐군요. 천국은 하늘에 없고 마음에 있지 않나요? 그런데 왜들 하늘만 쳐다보고 있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요?” 예수의 무덤을 보고 와 살아있는 부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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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M-P(typ240) + Summilux-M 1:1.4 / 50mm ASPH
2017, Srinagar, India © K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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