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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Feb 12. 2024

강아지 망막박리에 관한 경험들의 간단한 기록

마음은 안 간단한 기록

망막박리로 인해 시력을 잃고 안구를 적출한 강아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겪은 일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며 본 글은 의학적 근거를 두는 정보성 글이 아닙니다. 다만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22년도 봄 즈음, 현재 키우고 있는 반려견의 좌안 망막박리를 확진 받았다. 본래 시추가 안질환이 많기로 유명한 견종임을 이미 알고 있긴 하였으나 막상 내 강아지의 일이 되니 많이 힘들었더랬다.

2.
보통 보호자들이 강아지의 실명을 알아채는 때는 이미 양안 모두 시력이 소실되어 바로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을 인지하지 못하여 부딪힌다거나, 평소 자주 다니던 길도 걸음을 떼지 못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알아채게 된다고 한다.

3.
하지만 나의 경우엔 먼저 좌안이 시력 소실되었을 때 이상함을 알아챘었는데, 강아지의 눈동자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3-1.
일반적으로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은 눈에서 빛이 반사되는 특징을 보인다. 보통 흔하게 강아지들은 초록빛이 많이 난다. 초록색이 아닐 수도 있다. 빨강이라든지 등등...

3-2.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강아지의 좌안이 우안에 비해 초록빛으로 강하게 빛났다. 오히려 빛이 쨍하게 반사되어 튀듯이 보이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느낌이 아니었다.

4.
동네에 있는 작은 동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원장님이 안질환 관련 진료에서는 굉장히 서투른 분 같았다. 안압을 측정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했다(바로 이 즈음에서 곧장 병원을 바꿔 안질환 검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갔어야  했다).  어설픈 안압 측정이 끝나고 그 의사는 외관상 눈이 약간 충혈되어 보인다며 가벼운 염증이라고 판단해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추후 알고 보니 오히려 눈에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우려가 있는 진단이었다. 그래서 눈은 어느 정도의 전문적인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

> 아무리 급하더라도 "안압 측정", "안구 초음파", "산동 검사" 정도만이라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
> 진료과목에 "안과"라고 적혀있거나, "안과 전문 동물 병원"이나, "아시아 수의 안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이라면 체계적인 진료와 보다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4-1.
(4번에 적었던 그 병원을 제외하고) 여태까지 다녔던 동물 병원에서 안질환으로 진료를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안압을 측정했다. 백내장처럼 육안으로 증상을 확인할 수 있는 질환들도 있지만, 녹내장처럼 외관상 특이점을 확인할 수 없는 질환들을 위해서는 안압검사를 실시하여 눈이 정상적인 범주에 있는지 확인하였다.

> 정상안압 : 15~20mmhg
> 시력 소실의 가능성 있음 : 30mmhg ~
(견종, 건강 상태, 나이, 기저질환 등 여러 이유에 따라 의사의 소견이 달라질 수 있음)

5.
아무튼 처방받은 안약을 투약해도 무언가 느낌이 이상하기에 어설펐던 그 병원 말고 진료과목에 "안과"가 적혀있는 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안압 측정", "안구 초음파", "산동 검사"를 받았고, 망막박리를 진단받았다.

5-1.
소견 1, 좌안의 망막이 꽤 많이 벗겨져있는 상태. 병이 진행된 지 좀 되어 보이므로 박리된 망막을 고정하는 수술을 받아도 좋은 예후가 예상되지 않음.
소견 2, 망막박리 된 좌안의 안압이 정상보다 살짝 높아 녹내장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꾸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함. 우안은 정상 범위에 있음.
소견 3, 망막박리는 유전적인 이유에서 발병되는 질환이며 좌안에 망막박리가 발병된 이상 반대쪽 안구 또한 곧 진행될 것이 예상됨.
소견 4, 만약 이미 소생이 어려울 좌안 대신에 우안의 시력이라도 보존해야겠다는 보호자의 의지가 있다면, 월 1회 정기적으로 내원하여 추적 관찰을 하고 추후 망막박리가 발견되었을 시 곧바로 망막고정술을 시행하면 될 것.
소견 5, 하지만 전국에 망막박리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두 곳임. 서울대병원과 부산의 한 개인병원. 수술비도 비싸겠지만 워낙 난도가 높은 수술이고 예후가 좋기 어려우며 재발도 흔함. 본인이라면 시키지 않을 것. 본인도 시각장애견을 키워보았고 강아지들은 사람보다 활용할 수 있는 감각이 월등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굉장히 잘 적응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음.

5-2.
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일단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몇 달 동안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검사 비용만 해도 10~15만 원 정도는 들어갔고 어느 정도 괜찮은 상태를 유지했다.

6.
그리고 1년 정도가 지났을까, 결국 우안도 망막박리가 왔다. 그때 우리는 추석을 겸하여 제주에서의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산방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멋진 잔디밭에서 방금 전까지도 뛰어놀던 강아지였다.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강아지를 목욕시킨 후 사료를 먹으라고 불렀는데 다가오질 않았다. 이리 오라고 부르는데도 그저 꼬리를 흔들며 이상한 곳으로 비껴갔다. 그러고는 우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끙끙거렸다. 강아지의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순간은 숨도 쉬지 못한 채 그저 부정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6-1.
어차피 부정은 쓸모없는 일이었다. 하필 그때 제주에 있었고, 추석이었고, 저녁까지 다 먹은 늦은 시간이었다. 내륙에는 가는 곳마다 있던 24시간 운영되는 동물 병원들이 제주에서는 몇 없었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도 모두 받지 않던  차에 시내에 있는 24시간 동물 병원에서 콜백을 줬다.

6-2.
시내까지 1시간 정도를 달려 24시간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 일단은 안압 정도만 측정할 수 있었다. 안압이 너무 높아 녹내장에 쓰이는 안약을 점안했다. 강아지의 눈앞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고는 시력이 양쪽 다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눈이 충혈되어 있고 각막 검사를 했을 때 상처가 보여서 상처를 낫게 하는 안약도 함께 처방받았다. 의사선생님은 어서 내륙으로 돌아가 안과전문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선생님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7.
마침 한 달 전 경상도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도처에 위치한 아시아 수의 안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목요일은 휴진이라 또 하필 그 귀한 하루를 날리고 금요일 아침부터 일어나 진료를 보러 갔다.

7-1. (수술받기까지의 소견들)
소견 1. 양안 모두 망막박리. 최근 망막박리가 온 우안만 망막고정술이 가능함.
소견 2. 먼저 망막박리가 온 좌안 또한 어쨌든 미리 내원해서 레이저 시술로 망막을 고정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함.
소견 3. 우안의 안압이 높아서 안약으로 안압이 잡히면 그때 수술 여부를 다시 결정지을 수 있음 > 한 주 동안 꾸준히 안약 점안함. 다시 내원하여 안압 낮아짐 확인 후 망막박리 수술 진행하기로 함. 수술 전 검사 결과 좋음.

7-2. (수술 당일의 하루)
강아지는 당일 금식. 11시 정도 내원.
수술 전까지 강아지는 수액 맞으며 15분 간격으로 3가지의 안약을 순서대로 점안.
수액 바늘 빠지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강아지를 잘 보살펴야 함. 거의 6시간 넘게 혼자 개를 끌어안고 앉아서 계속 점안.. 허리 작살나기 딱 좋았다. 수술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림.
수술 시간 미뤄짐. 약 1시간 반 좀 안되게 미뤄졌나.. 마지막 타임이어서 이해됨.
수술하는 과정 모니터링할 수 있음. 강아지 눈 절개하는 동시에 가슴이 아파 밖에 나가서 버거킹 먹고 옴.
수술 후 수납, 원장님이 강아지 눈 영양제랑 캔 사료 좀 챙겨주심, 당일 귀가.

> 수술 전 수액 맞는 중인 강아지를 계속 안고 있을 수 없으니 카시트나 개모차 챙겨가면 좀 편해짐.
반드시 꼭 2인 이상으로 함께 갈 것, 혼자 가면 아침부터 수술할 때까지 화장실 못 감. 테크니션 선생님들 바빠 보여서 부탁하기 어려움, 인싸 기질이시면 주변 다른 보호자들에게 잠시 부탁할 수도...
> 강아지 수술 후 체온 떨어져 벌벌 떨 수 있으니 담요 필수, 기저귀 필수

8. 수술 후
안약 점안, 몸을 털지 못하게 계속 관리, 넥카라 끼운 채 관리. 약 먹이기.

동네 가까운 병원에서 안압을 재며 관찰, 계속 안약 넣어주기.

8-1.
다른 개들은 수술 후 2주 정도부터 시력이 회복되기 시작한다고 하던데 우리 강아지는 감감무소식. 빛 정도는 느끼는 수준이었고 한 달이 지나자 아주아주 가까운 물체 정도는 앞에 있는지 정도의 인지가 가능했음. 희망적인 순간이었음.

다 좋을 순 없는 세상살이, 이 정도만 해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9.
마저 회복만 하면 되겠다 싶던 차에, 수술받은 눈의 눈동자에 희뿌연 것이 쌓이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눈 안에 망막을 눌러주라고 넣은 실리콘 용액이 바깥으로 새는 것이라고 했다. 방법은 그저 새는만큼의 실리콘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또 전신마취 후 수술을 받았다.

수액 맞으면서 안약 넣고 대기하다가 수술 들어가고... 또다시 반복.

사람이 받는 망막박리 수술도 어렵기로 자자한데, 조건을 완벽히 제어할 수 없는 강아지가 받는 수술에 부작용이 생기는 거? 있을 수 있는 일이다.

9-1.
흘러나온 만큼 제거했던 실리콘오일이 다시 또 흘러나왔다. 다시 병원을 갔다. 이런 기세면 눈에 넣은 오일이 모두 제거될 때까지 수술을 반복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했다. 시력이 돌아온 강아지라면 그것이 의미 있는 방법이겠지만, 미미한 우리 강아지에겐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매번 전신마취를 하는 것도 무리이고, 일단 실리콘오일이 모두 밖으로 나올 때까지 내버려 두자고 하는 것 같길래 그러자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공허하다. 내 마음은 얘가 지금 응급인데 방법이 없다니, 억장이 무너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에 네 번, 안약을 한 방울씩 넣어주는 것 밖엔 없었다.

10.
수술받은 안구가 부풀어 올라 꽤 커졌다. 다시 또 가슴에 강아지를 끌어안고 병원엘 갔다. 높아지던 안압을 견디다 못해 안구가 커진 거라고 했다. 이건 다른 손쓸 방법이 없다는 의미라고 하며 의사는 결국 안구적출을 이야기했다. 의안은 부작용이 흔해 재수술의 위험이 있을 거라고 했다. 스케줄을 물으니 그냥 동네에서 하라고 한다. 알겠다고 한 후 병원을 나왔다.

11.
망막고정술 이후 안압을 재러 다니던 동네 병원에 전화 후 예약을 잡고 안구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사진을 볼 수 있겠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보겠다고 했다. 보석같이 예쁜 미안한 눈. 이제는 못 보는 그 눈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미안하다.

11-1.
하루 입원을 한 후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 후 다음 날이 원래 제일 아프기로 유명하듯, 강아지도 많이 아파했다. 내내 끙끙거리며 힘들어했다. 약을 먹으면 바로 강아지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잠만 잤다. 통증이 잠시 잊히는 그 와중 가장 원하는 건 먹을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이었다.

11-2.
그다음 날 붕대를 풀었다. 많이 팅팅 붓고 멍도 들었지만 여전히 예쁜 얼굴이다.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활발하다. 눈이 안 보이는데 화장실은 어쩜 그리 잘 찾니.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은데 벌써 너는 나보다 한 발자국 먼저 힘 있게 살아가는구나. 너는 천사가 아닐까. 앞으로는 건강하게 즐겁게만 살자.


반려견 보호자의 입장에서 그냥 있었던 일들입니다. 어떠한 의도 없이 저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보호자들께 하나의 사례가 될까 싶어 적어보았습니다. 함께 힘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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