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번 전시는 김창열(1929-2021)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회고전으로,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을 재조명한다. 20세기 중반,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도시화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은 김창열의 내면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이는 고유한 조형 언어로 승화되었다.
김창열은 1950년대 앵포르멜 운동을 주도하며 서구 현대미술의 어법을 한국적 정서와 접목하는 데 앞장섰고, 1965년 뉴욕에서의 활동을 거쳐 1969년 파리에 정착하기까지 자신만의 예술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과 도전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1970년대 초, 물방울 회화의 여정이 시작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였고, 평생에 걸쳐 탐구한 물방울은 곧 김창열을 상징하는 예술적 기호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물방울의 시각적 아름다움 이면에 자리한 상흔의 기억과 근원적 미의식에 주목하며, 작업 초기 및 뉴욕 시기의 미공개 작품과 귀중한 기록 자료를 통해 작가의 창작 여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물방울이라는 형식 속에 스며든 다양한 조형 언어를 새롭게 발견하고, 우리가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김창열의 예술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 현대미술이 지닌 고유한 정신성과 그 미술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비가 오는 날 아침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니다.
뉴스에서만 자주 들었던 작가님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어 좋았고 마침 국민의 박물관·미술관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문화서비스 제공을 위해 실시하는 ‘박물관·미술관 주간’ 사업에 덕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무료관람을 실시해서 더 좋았습니다.
전시장으로 가는 길(사인보드가 인상적이다)
바닥에 물방울을 상징하는 느낌으로 표시해 둔 센스! 가는 길 유리창에도 물방울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자분들이 열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중반, 김창열은 물방울 회화에 문자를 결합하며 작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어느 날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던 중, 문자와 이미지가 긴장감 있게 얽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문자와 물방울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곧 천자문을 활용한 회귀' 연작으로 발전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한자 교본인 천자문을 배웠고, 천자문은 그가 처음 접한 문자이자 세계를 인식하는 기호였다. 작가는 이 기억을 따라 글자를 화면 가득 촘촘히 채워 나갔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천자문은 작가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 위에 얹힌 물방울은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도구로 작용했고, 이는 유년과 동양적 정서로의 회귀이자, 나아가 깊은 사유의 시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1990년대 중반, 남프랑스 드라기냥(Draguignan)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한층 더 진화한다. 거친 마대와 모노톤의 화면 위에 정갈하게 쓰인 천자문과 달리, 이 지역의 풍요로운 자연에서 비롯된 색채는 문자와 어우러지며 더욱 생동감 있는 물방울의 변주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억을 담은 문자와 곧 사라질 운명을 지닌 물방울이 만나는 '회귀' 연작은, 기존 회화의 문법이나 사조의 계보를 넘어서는 김창열 예술 세계의 독창적 성취라 할 수 있다.
<회귀> Recurrence, 1996, 마포에 역, 아크릴릭 클랍, 유화 물감, 195x330cm, 196X330cm.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소장
물방울의 정밀묘사보다는 전체적인 어우러짐에 더 신경 쓴 느낌입니다. 배경과도 잘 어우러집니다.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들이 어찌 보면 문자에 숲에 붙어있는 반딧불처럼도 보이는군요.
<해체-물방울 PA88024〉, Deconstruction - Waterdrops PA88024,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251.4X199.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외국인들은 선과 도형으로 보이겠지만 한글을 아는 사람들은 이게 한글의 자형으로 보일 거고 한문의 획처ㅏ럼 보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배경이 있으니 물방울이 더 돋보이네요.
작가의 과거 한문을 배웠던 추억으로 돌아가 연작을 해낸 건 아주 좋은 발상인 것 같습니다.
<회귀 SA04> Recurrence SA04, 2004,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162X130cm. 개인 소장
The drop and the line
물방울을 모티브로 입체 조형까지 만들었다니 멋집니다.
유리구슬들이 물방울처럼 맺혀있는 것 같습니다.
<회귀> Recurrence, 2012, 마포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195X300cm.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소장
<물방울> Waterdrops, 2006,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89X 117cm. 개인 소장
<회귀> Recurrence, 2013, 리넨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200X 500cm. 개인 소장
물방울들이 불꽃처럼 맺혀있습니다. 대형작품이라 실제 보면 확실히 스케일감 덕분인지 더 웅장해 보였습니다. 확실히 배경 질감이 있으니 훨씬 더 깊은 맛이 있습니다.
<회귀> Recurrence, 1989,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194X 160cm. 개인 소장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물방울을 집착에 가까운 정신적 강박으로 그려왔다.
내 모든 꿈, 고통, 불안의 소멸. 어떻게든 이를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며.
김창열의 자필 메모, 1990년대경
김창열 작가에게는 물방울이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근본인 예술이라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느껴진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거의 평생을 바친 작가의 진실된 말이라 여겨집니다.
그걸 단순한 강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사> Rite, 1965, 컨버스에 유화 불갑, 162X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김창열의 초기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는 '제사'연작들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얼굴처럼 보이는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형상은 찾아볼 수 없으며,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평선들은 굵은 붓질의 행위가 그대로 드러남과 동시에 투브에서 바로 짠 듯한 유화 물감의 덩어리가 끈적하게 엉기면서 매우 거칠고 강한 물질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색채는 전체적으로 매우 진한 검은 색조가 사용되어 상당히 파괴적인 이미지를 자아내는데, 이러한 특징들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대유행했던 추상미술사조 엥포르멜의 영향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작가가 이렇게 침울하고 파괴적인 비정형 회화를 시도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작가가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들과 맡닿아 있는데, 그는 전쟁으로 인하여 대학과 중학교 시절 친구들 절반을 잃고 말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여동생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절대 비극을 온몸으로 체감하였기에 그는 이러한 상흔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하였으며, 즉 암울한 색채와 강하고 파괴적인 물질감은 이러한 전쟁의 상흔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라는 제목 역시 '전쟁의 광풍 속에서 목숨을 잃고 만 사람들에 대한 제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회귀> Recurrence, 1990, 리넨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불감, 181.8 X227.3cm. 개인 소장
<물방울> Waterdrops, 1980, 신문에 흑연, 수채 물감, 49.6X65.3cm. 개인 소장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김창열에게
삶은 지극히 끈질기면서도, 동시에 덧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을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감과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물방울은, 아무리 그려도 끝내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애도의 일기였는지도 모른다.
<르 몽드> Journal Le Monde, 1981, 신문에 아크릴릭 물감, 50X67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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