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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Jun 30. 2023

들꽃

잡초도 예술이다

엄청난 비가  하늘이 뚫린 듯 밤새 쏟아져 내렸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는 끝 치고 저 멀리 발왕산 꼭대기부터  안개가 잔뜩 피어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아내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피잔을 들고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알펜시아 쪽 구름 사이로 해가 살짝 얼굴을 내민다. 날이 맑았을 때 아내와 난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위해 횡계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오래간만에 동계 올림픽 때 만들어 놓은 스키점프대가 있는 언덕길을 넘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언덕 정상쯤 왔을 때 길가에 금계국과 망초의 하얀 꽃들이 커다란 밭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망초는 번식력이 워낙 좋아  집에 피어나면 온통 자리를 잡고  다른 꽃들이 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망초는 심지도 않지만 뽑아야 되는 잡초로 치는 풀이다. 봄에 망초대가 올라오면 연한 순을 따다  먹기도 한다.

금계국은 토종식물은 아니지만 노란 꽃이 제법 이쁘다. 하지만 길거리 어디에서나 무리를 지어 피는 흔한 꽃이라 가치 있는 꽃으로 치지 않는 길거리 꽃이다. 고지대라서 그런지 갈대 같은 들풀도 무리를 지어 피어 있다. 차들은 무심하게 길거리 꽃들을 지나쳐 버리는데 아내는 차를 세우자고 했다. 지난주 전주 갔을 때 아내가 사 온 작은 앙증맞은 도자기에  꽃을 꽂고 싶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이 꽃이 이쁠까? 저 꽃이 이쁠까? 생각하며 꽃을 꺾다 보니  저만치에 빨간 양귀비 꽃도 보이고 이름은 잘 모르지만 보라색 들풀도 이뻐 보여서 한아름 꺾어 왔다. 처음부터 그러려는 마음은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커다란 꽃다발이 되었다.

아내는 꺾어온 들꽃들을 가위로  키를 맞추어 자르고 오래전부터 비어져 한편에 처박혀 있던 유리로 된 꽃병에 꽂았다. 그러자 그 흔한  들꽃들은 아름다운 꽃병이 되었다.

이 흔한 들꽃들로 식탁은 아름다워졌고  집안은 금세 환하고 아름다워졌다. 너무 흔하다 보니 돈을 지불하고 산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을지언정 잘 매만지고 나니 훌륭한 작품 같은 꽃병이 되었다.

사람들도 그럴 것 같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에 손을 거쳐 잘 매만져진다면 보기에 좋은 꽃다발 처럼 되지는 않을까? 어느 개그맨이 푸념처럼  했던 말처럼 일등만 기억되는 이 세상에 들풀처럼 잡초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당신들도  멋진 꽃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오늘 식탁  꽃병은 돈을 들이지 않고 어느  꽃병보다도 더 아름다운 꽃병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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