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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Feb 14. 2024

그리움이 없는 시대

휴대폰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사는 세상

 눈이 며칠 동안 내렸다.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한 동안 집에 갇혀 있던 아내는 딸들이 있는 서울에서 구정을 보내겠다며 서둘러 서울로 올라갔다.



 아내는 올라간 김에  성형외과 가서 자꾸 쳐져가는 눈꺼풀을 상담하고 수술까지 할 계획이라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내는 이것저것 먹을 거로 냉장고를 채워놓고 갔다.

며칠 혼자 지내고 나니 아내의 빈자리가 크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것 같은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 도로 닫고 만다. 지난번에도 안 먹고 오래 놔두어 상해서 버린 것도 많았다. 웬만하건 다 싸서 보냈는데도 많은 것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눈이 많이 온지라 식사는 집에서 대부분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것저것 찾기가 귀찮아서 보이는 것 손에 집히는 것만 몆 가지로 식사를 해결하고 만다.

겨울이라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 아내가 그립다.

예전 대학 다닐 때부터 아내와 연애를 했다.

낮에 만나 테이트를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해선 마루에 있는 전화기를 방에 가족들 모르게 갖고 들어가서 통화하기 일쑤였다. 전화요금이 많이 나와 전화기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것도 끝이 났다.

요즘같이 휴대폰이 있는 시대라면 어땠을까?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을 때면 통화를 했을 것이다. 그것도 영상통화만 했을 것이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면 애타는 그리움은 없을 거다.  밤새 구구절절하게   연애편지도 없을 것이다.

그리움이 있어 애절한 편지도 있을 것이고 그리움 덕분에 결혼도 서둘러 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손쉬운 영상통화  때문에 보고 싶다는 그리움도 없어지고,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도 있어 거짓말이나 변명도 할 수 없게 됐다.

또 GPS 기능이 있어 현재 있는 곳도 한눈에 알 수 있으니 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모르는 것도  인터넷 검색으로 모든 걸 금방 알 수 있으니 사기를 당하거나 속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많은 걸 공유하니  정보도 금방 퍼지고 궁금해할 것도 없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화기만 있으면 누구나 전문가 수준이다. 휴대폰을 모두 갖게 되면서 궁금하거나 보고 싶어 지는 마음도 줄어든 것 같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너무도 많아졌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감정을 말라가게 하고 결혼도 잘 안 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한밤중에도 내일 아침 먹을걸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에 배달되어 있는 세상이다. 이처럼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의 감정도 변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몇 년 동안 코로나 질병으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습관이 달라졌다. 휴대폰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만나고 보고 하면서 직접 찾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일까?

이번 설에 해외에 사는 딸가족이 영상 통화로 새배를 했다. 명절 때면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도 드리고 선물도 드리고 음식도 함께 먹고 했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영상통화로 세배하고 선물은 택배로 보낸다. 모든 게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움은 어찌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는 있다지만 체온으로 느끼는 따뜻함은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랑은 체온을 느끼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직도 아내의 손을 처음 잡던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수줍은 사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쉽게 만나고 쉽게 모든 걸 알아가고 쉽게 실증내고 쉽게 헤어지니 나로선 이해하기가 어렵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참 많은 게 변했다. 그게 좋다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잘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건 태초부터 우리에게 있는 사랑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던 사랑한다는 건 행복하고 좋은 일이다.

휴대폰기능의 발전으로 너무나 많은 게 변했다.

휴대폰만 있으면 친구나 애인이 없어도 심심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그리워하지 않아도 사랑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더 혼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점점 심란해진다.

눈이 내려 흰 도화지 같은 된 세상  다시 구도를 잡고 천천히 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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