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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Sep 21. 2023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이유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년

난 어둠을 쫓아내듯 밝아오는 새벽보다  수많은 색으로 붉어지는  저녁노을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새벽  동틀 무렵  까만 어둠이 옅어지며 밝아지는 보랏빛과 해 뜰 때에 황금색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늦잠을 즐기는  나에게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힘도 든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니 길고 긴 하루를  갖게 되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어  풍성한 하루가 되겠지만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은퇴를 했으니  그리 서둘 필요는 없어졌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새벽 동틈 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노년이 되면  저녁 보며 여유 있게 포도주 한잔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쉰다는 것  여유가 있다는 것은 노년의 특권이다.

황금빛의 아침해로 하루를 시작해서 수많은 색깔로 물들어가 점점 어두워져 가는 저녁  하늘을 보면 마치  사람의 일생 같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은 아침에서 저녁이 되는 하루와 같다고 생각한다.

노년이 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후회스러운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젊었을 때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들이 생각이 나면  가슴이 조금은 설레는 좋은 추억이 된다.

듣기 좋은 음악은 언제 들어도 좋은 것처럼 좋은 기억은 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병과 싸우고 사는 것과 싸우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져도 거울 속의 나는 고집스럽게 반백의 말라버린 노인이다.

노을은 이런 노인조차도  아름답게 비췬다. 그동안 험하게 살아온 인생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처럼 모든 걸 수용하고 이해하게 하고  깨닫게 하기에 난 조용히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게 좋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어둠은 내리고 붉은 저녁노을은 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죽음처럼 깜깜한 어둠 속이 될 것이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

동트는 해처럼 환하게 태어나서 뜨거운 태양처럼 살다가 지는 해처럼 사는 거다. 난 지는 해가 되었으니 어쩌면 저녁노을이 좋은 건지 모른다.

열정적으로 살아봤으니 이제 쉼을 갖고 저녁노을 보며 삶을 돌이켜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바다에서 돌아온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듯 나도 지나온 삶을 손질해야겠다.

노을이 어둠에 완전히  밀려날 때까지 아내와 도란도란 지내온 일들을 이야기 이야기 할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후회하고 회개하고 다행이다 생각할 것이다.

늘 부족한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어찌 살아왔건 노을처럼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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