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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l 06. 2016

13. 수영장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탕으로 선택한 길을 가는 거지


<수영장> 이라는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 줄거리는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잔잔하게, 별일 없이, 흘러간다. 가족을 떠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찾아 일본에서 딸 사요가 온다. 사요는 자신을 일본에 놔두고 떠난 엄마가 그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족처럼 너무나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모습에 속이 상하고 당황해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천천히 섞여들면서 조금씩 그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예전부터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어딘가로 떠나 버렸어요. 그것도 아주 즐겁게 말이에요.”

 

"어른도 아이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거야.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탕으로 선택한 길을 가는 거지."


“그건 이기적인 거에요”


"글쎄....... 그럴까?"


커다란 이야기도, 특별한 볼거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영화였다. 배경인 치앙마이 때문이었을까...






난 일본에서 왔어. 넌 어디서 왔니? 치앙마이로 가는 밤버스에서 옆자리에 앉게 되어 알게 된 오키나와 출신의 나오상. 그녀는 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산다고 했다. 일본 사람이, 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나, 니콜라스, 에이미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니콜라스는 그리스 크레타 섬 출신으로 세계의 채식 요리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장기간 여행 중이었고 에이미는한류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싱가폴 아가씨였다. 우리의 궁금증에 나오상의 대답은 간단했다. 글쎄. 난 늘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 어쩌다 보니 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게 됐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하기는 해.


나는 일본 영화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오키나와가 배경인 유명한 소설이 있는데 <남쪽으로 튀어>라고, 알아? 나오상은 그런 책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니콜라스에게는 맛있는 그리스의 음식과 아름다운 그리스 섬들에 대해 늘어 놓았다. 그곳에 대한 여행 책을 쓰기도 했었노라고. 그러자 그는 조금 의아해했다. 그리스가 아름답다는 건 알아. 사랑스러운 곳이지. 하지만 나는 내 나라 그리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 좀 복잡한 문제가 있는데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오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나도 일본을 사랑해. 하지만 당장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언젠가는 가겠지. 지금은 여기가 좋아. 





뭐, 이해한다. 내가 떠나온 곳이 나 역시 좀 그렇거든. 생활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름의 사정들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각자의 고향 이야기를 하며 가슴 한 켠이 더워지는 걸 느꼈다. 말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상한 합의에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우리는 모닝커피로 치앙마이에서의 만남에 축배를 들었다. 한국 음식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는 나오상을 한국 식당에 데려가 막걸리와 순두부를 맛 보이고, 니콜라스에게는 한국의 채식 요리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삶에, 여기에 있든 어디로 가든, 그 길에 행운이 함께 하길 빌어주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장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여기와 어딘가를 넘나들면서 경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자신의 땅을 넓혀가고 있었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든 유연하게 이쪽 혹은저쪽으로 옮겨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하면서. 


욕망이 꿈틀거린다. 경계에 서고 싶은 욕망. 양쪽 모두에 속해있는 삶. 동시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삶. 그리하여 장소뿐 아니라 정신 역시 경계를 넘나들고 싶다고.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선입견으로부터, 익숙함으로부터, 나를 속박하는 모든 덫들로부터……



영화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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