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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l 22. 2016

17. 맥주

나를 찾기 위한 첫 걸음은, 일단 맥주 한 잔부터


세계에서 생맥주가 가장 싼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베트남이다. 인구 분포에 20대들이 제일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젊은 열정으로 성장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호치민의 거리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아이를 태운 엄마도, 학생도, 직장인도, 모두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무거운 배낭을 멘 채 지도를 보랴 오토바이를 피하랴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이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도착하자 마자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콜록콜록. 매연을 너무 많이 들이마신건가. 쿵쾅쿵쾅. 창문 밖으로는 요란한 음악이 들려왔다.





숙소가 있는 지역은 '데땀'이라고 불리는 호치민의 여행자 거리. 매일 저녁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의 맥주판이 벌어지기로 유명하다. 한 밤의 맥주 거리는 흥이 넘실넘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작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발디딜 틈도 없이 꽉 찬 공간은 어디까지가 가게이고 어디까지가 도로인지 분간도 안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데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혼자 온 거면 여기 와서 앉아.  우린 싱가폴에서 왔어. 나는 스테파니, 이쪽은 마이크. 여기 사이공 맥주 한 병 추가요! 맥주에 이끌려 털석 앉고 보니 앉은 자리가 꽃자리가 아니라 앉은 자리가 술자리! 치어스!


둘은 휴가 차 왔는데 내일이면 '업무 복귀'해야 한다고 슬퍼하며 오늘 밤 진탕 마실거라고 했다. 옆 자리엔 호주, 캐나다, 독일, 미국, 프랑스 등에서 온 여행자들이 마치 오래된 벗들처럼 어울려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들 연휴를 보내러 베트남에 왔는데 그 중 유일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장기간 아시아를 여행중인 사람이 있었으니 술이 오르자 누군가 농담을 던졌다. 너가 맥주 사! 자유를 가진 건 너밖에 없으니. 그도 맞받아 쳤다. 무슨 소리! 난 돈이 없다고! 하지만 좋아, 오늘은 내가 쏘지! 여기는 회사원이건 백수건 부담없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 사이공 비어 하나 추가요! 맥주 두병에 나도 그제서야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탄 기분이 되었다.     



                         


한국분이세요? 하노이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한국 여행자 둘을 만나게 되었다. 맥주 한잔 어때요? 호치민의여행자 거리 못지않게 하노이도 맥주로 유명하다. 론니플래닛 가이드북에는 하노이에서 반드시 해야할 것 중 ‘비어정션(맥주구역)에서 생맥주 마셔보기’를 적극 추천하고 있다. 이곳 역시 하루의 일을 마치고 맥주로 피로를 푸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로 초만원. 여기 생맥주 3잔이요!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계에서 생맥주가 제일 싼 곳이 베트남이라는데 맥주 한잔에 350원! 10잔을 마셔도 4천원! 이럴 땐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 못하는 나의 저질 체력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만하다.


태국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앞으로 무얼 할지 생각하며 여행 중이라는 C와 군대 제대 후 복학하기 전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 찾고 싶어 여행을 나왔다는 S. 나 또한 회사 일이 아니라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우리 셋은 비슷한 고민으로 맥주 잔을 부딪혔다. 따뜻한 날씨에 시원하고 부드러운 맥주가 술술 넘어간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건만 술기운 탓인지 아직 학생인 S에게 나는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잠깐의 여행으로 좋아하는 거 못찾아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게 있으면 무조건 해봐야 해요.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어쨌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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