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오늘 뭘 할 거에요?
“그럼, 지금 있는 재료들을 모두 꺼내서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든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그 시간까지 깔깔거리며 맛있는 걸 먹을 거에요.”
- 그럼, 저도 초대해 주세요.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와 미도리의 대화이다. 비슷한 대화는 영화 <원위크>에도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주인공은 치료도 애인도 가족도 모두 뒤로 한 채 여행을 떠난다. 이틀 안에 돌아오겠다던 여행은 1주일로 늘어나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그는 묻는다. 만약, 앞으로 한 달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얼 하겠소? 여자는 대답한다. “글쎄요... 지금 하는 걸 하겠죠.” 그게 무슨 뜻이죠? “내 인생은 1주일 뒤나 혹은 한달 뒤 같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으니까요.”
나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동안 고마웠다고, 여태껏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그래도 나는 항상 당신을 사랑하였노라고, 말해야 할까? 혹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 놓고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일까? 아니면 당장 짐을 꾸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로 내일 지구가 멸망하거나 영화에서처럼 죽음이 성큼 찾아오고 나서야 무얼 할지 알게되는 걸까.
책에서 본 늙은 매라는 별명을 가진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는 여든이 훨씬 넘었고,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부터 6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은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도 여행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으니, 그는 인생 자체가 크나큰 여행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늙은 매는 얼마나 많은 산을 올랐고 얼마나 많은 국경을 넘었으며 얼마나 멀리까지 가보았는지 하는 것보다 삶이라는 여행이 경험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삶이 그렇다는 것을 나 역시 어렴풋이나마 알지만 아직은 그것에 기꺼이 승복할 수가 없으니 기어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반드시 인생 여정에 추가하고 말겠다는 고집에 가까운 열망을 가지고 있다. 아니,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데도 여행을 떠올리다니!
그런데 만약 정말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까? 아마도 냉장고 안의 모든 재료를 꺼내어 최고로 맛있고 정성스럽게 요리를 한 다음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고 마시며 내일이 없는 오늘만의 여행 속으로 떠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