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단지 한 장면을 위해 2시간짜리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어느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꽤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하려고 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소설가도 있다. 나 역시 고작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눈표범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사진작가. 막상 눈표범이 나타나자 그 모습에 감탄만할 뿐 정작 사진을 찍지 않는다.
"때로는 나를 위해서 찍지 않아.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그냥 그 순간에 머물기 위해서야. 인생은 여기 그리고 저기에 있지. "
눈표범은 금새 사라지고 그는 카메라를 뒤로 한 채 축구를 하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 들어 신나게 순간을 즐긴다.
인생은 여기 그리고 저기.
일상에선 일상의 순간에.
떠남에선 떠남의 순간에.
지금 여기에.
어쩌면 이토록 단순한 사실을 알기 위해 많고 많은 날들을 지나온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꿈틀꿈틀 일어난다. 아마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내 삶은 과거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으며 지금. 여기에. 있기에 나름대로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 있지만 두려움은 두려움대로 제 갈 길을 가곤 한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오롯이 순간에 존재하는 삶은 아무래도 이번 생엔 텄다 텄어. 사람의 일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쓰나미, 지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 등 삶이란 정말 예측 불가능해서 마치
불투명한 천으로 덧씌워진 상자에 손을 집어넣는 게임 같다. 과연 상자 속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것이 손에 잡히게 될지 모르니까 후들후들. 그러니 두려움은 그냥 옵션처럼 껴안고 현재를 즐기는 수밖에. 지금 잡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는 순간들은 제때 챙겨주지 못한 생일선물 같고 11월 12일 날 편의점 매대에 놓여있는 빼빼로 상자처럼 생기를 잃어버리니까.
교토에 머문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한국에선 방사능 비를 우려해 초등학교의 봄 소풍이 취소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이곳의 아이들은 그런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산을 쓰고 선생님을 따라 재잘재잘 종종 거리며 소풍을 나선다. 나도 챙겨온 우산을 쓰고 철학자의 길로 산책을 나섰다.
아, 어쩜! 하천을 따라 벚꽃이 가득한 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름다움에 취해 머릿속이 순간 텅 비어 버렸다. 오직 벚꽃과 나와 이 산책길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이 세계의 전부 같았다.
길을 걷다 산책길에 있는 귀여운 고양이 잡화점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그려진 엽서를 한 장 골랐다. 엽서에 적힌 글귀의 뜻을 물으니 “그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봄을 즐겨 보자.라는 의미라고 했다. 세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라나가 생각났다. 순간을 사는 법을 내게 알려주고 간 녀석. 지금은 또 다른 고양이 하니란 녀석이 내 곁에 있다.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태평하게 오늘을 즐길 줄 아는 녀석. 진정한 조르바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 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 <그리스인 조르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