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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an 24. 2017

48. 청춘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젊은 날에


오늘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카페 입구에 놓여 있던 문구에, "오늘따라 너, 왠지 더 어려 보여~" 친구와 우스갯소리를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선다. 적잖이 위로가 된다. 충분히 젊다면 이런 말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나이 들수록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느니 어른이 된다느니 이러쿵저러쿵 암만 떠들어대도 솔직히 젊음이 부럽고 좋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자꾸만 그 숫자를 물어오거나 되짚어봐야 하는 상황 속에 놓이게 되면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행은 그런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준다. 비행기에 올라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나이는 물론 일상의 나와 잠시 작별을 고한다.




하와이하고도 마우이섬. 항구를 끼고 있는 작은 동네의 햄버거 가게. 메뉴판을 펼치고 주문을 한다.


마릴린몬로 버거 앤드... 마이타이, please.


“마이타이는 칵테일인데, 21살 넘지?”


짧은 핫팬츠에 포니테일 머리를 한 앳돼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물어온다. 그녀는 마스카라를 짙게 바른 커다란 두 눈을 깜박거리며 한 자락의 의심도 없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 눈빛은 김밥 재료를 고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님(어머님이라니!)이라고 불렀던 한국 마트 점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물론이지.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케이. 그녀는 다시 그 큰 눈을 깜박거리며 주문을 받아 적었다. 규칙상 물어보았건 정말 몰라서 물어보았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고 그런 것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 싶으니까. 그저 풍경과 사람들 속에 섞여서 때때로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고 싶은 여행자일 뿐이니까.


이윽고 나온 이름도 핫한 마릴린몬로 버거는 정말이지 마릴린 언니의 가슴만큼이나 풍만해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건 2개라도 거뜬히 먹었을 텐데. 빵과 고기는 남기고 그 사이에 끼워진 둥그런 파인애플을 꺼내 부채꼴 모양으로 자른 다음 디저트처럼 먹었다.  





햄버거를 먹고 밖으로 나오니 쨍쨍하던 한낮의 태양은 그새 누그러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엔 핑크빛 구름이 길게 누워있었다. 마우이섬 서북쪽에 위치한 라하이나는 여행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동네였다. 오래된 반얀트리로 가득한 공원은 나른한 산책 코스로 안성맞춤이며 겨울이면 혹등고래 떼가 찾아든다는 짙푸른 바다는 늦은 오후 무렵의 황금빛 태양 아래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반짝거렸다. 특히 일몰이 아름다워서 해 질 녘이 되면 바다를 마주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로맨틱한 저녁을 보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섬에 머무는 동안 오후가 되면 라하이나로 향했다. 하루 중 해지는 순간은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이어서 그때의 하늘과 바람과 공기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이 느껴진다. 아름다워서 짧게 느껴지는 걸까. 짧아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이미 지나가고 없는. 아쉬워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랬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마치 청춘의 시절처럼.                                                                                                  





샤샤샤샥- 하고 고양이가 지나간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든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샤샤샤샥- 어쩌면 이것은 청춘이 지나가는 소리이다. 여행의 날들이 흘러가는 소리이다. 그건 마치 고양이의 빠른 발걸음과도 같아서 아차. 하면 벌써 저만치에 멈칫 서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실제 크기보다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쫓아가며 나는 그림자에 대고 묻고 있었다.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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