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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Jun 16. 2020

시일기_벌써 내복을 사서 보낸 이가 있다

오늘 날씨 맑음

서울에 한 달을 들렸다 가려다

2주를 할머니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지금은 움직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비싼 시기

할머니가 살지 않는 할머니 집에는 20년이 더 된 쟁반이 있었다

이름 모를 신부의 수품을 축하하는

머리를 터는 수건은 1995년 어느 하나 기억 못 할 일을 기념하는 수건

달력은 작년 8월에 멈춰 있었다

마지막인지 모르고 자리를 잡고 떠나야지 하다가 못 떠나고 만다

그것을 아는 이들은

1달짜리 3달짜리 이별도 진심으로 배웅을 한다

할머니 집은 아마도 나의 체취로 팔려 나갈 것


썩어 뿌리째 뽑아낸 어금니 자리는

누구라도 하나 묻을 듯 성실한 노동으로 빛을 끊어 내놓고 있었다

산짐승에 안 들키려면 1미터 깊이는 파내어야 한다

혼자서 낳는 것도 혼자서 묻는 것도 사람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울한 생각일랑 하지 마라

비석 같은 기둥을 세울 값은 엄마와 형과 내가 삼등분

굳이 청하지는 않았는데 가여운 얼굴이 내 무기라

그냥 고개만 살짝 숙이고 있어 본 것


병은 흐르는데 사람만 묶여 있다

사람은 묶여 있는데 시간은 곧잘 흐른다

멈추면 다시는 이처럼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오래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리가 절로 움직일 때가 온다

내리막길도 아닌데

숨은 혀끝까지 차고 가슴도 뼈를 때리는데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닌 듯 혼자서 날고 있다

그때 깨닫게 된다

이 다리를 멈춰 쉬면 다시는 달릴 수 없겠다는 것을


그래서 심장이 멎을 때까지 남 같은 다리에 끌려가기로 했다

쿵하고 앞에서 뛰던 선배가 쓰러져 죽었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어 서울로 달렸고 과거나 다른 이름들로도 달렸고

이제는 날짜가 달리 열리는 곳에서 병과 함께라도 달리고 있다


익숙한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물러진다

멈추면 안 되기에 점심도 굶고서 길 위에서 발목만 벌주었다


벌써 내복을 사서 보낸 이가 있다

겪어본 겨울이고 더는 무섭지 않아 다행이다

가자는 말을 안 해도 된다 다행이다

달리던 이가 달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멈추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게 질문을 해주오

사랑



W, P 레오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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