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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오 Nov 26. 2022

이 밤은 나의 가장 큰 작품인 것이지

오늘 날씨 비

요즘 꿈에서 친구들을 자주 본다. 더 이상 내가 굳이 안부를 묻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내게 안부를 물어오지 않는. 어제는 꿈에서 다시 군대에 갔다. 친구이지만 깨고 나니 누구였는지 알 수 없는 2명과 함께 기차역으로 가다 심하게 다퉜다. 마음이 상해 군대 따위 얼른 들어가 버려야지 하며 몇 걸음 앞서 걸었다. 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저 기차에 타면 내가 내가 아닌 무엇이 된다. 왠지 그러고 싶어 져서 어색한 말로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친구가 화해를 해줬는데 그 방식이 악수였는지 포옹이었는지 따뜻했는지 거칠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그 녀석에게서 안부 문자가 왔다. 이제는 굳이 내가 찾지 않아도 자꾸 소식을 알 수 있게 되어 버린 그 녀석. 그 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억들은 그 녀석의 방에 자러 갔을 때 얼음처럼 차가웠던 그의 방바닥. 그리고 우리 집 화장실 바닥에서 입이 돌아간 채 잠들어 있던 모습, 찢어진 곳을 테이프로 붙여 놓았던 비닐 롱 패딩, 색이 얼룩덜룩하던 장발의 머리, 학교 앞 떡볶이 트럭에서 넉살 좋게 받아먹던 공짜 튀김, 한 잔 가득 받아 들고 가던 어묵 국물, 그것을 훌쩍거리는 그의 팔자걸음 등이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을 아니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훨씬 더 오랫동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내게 안부를 물어줬다. 무엇이 그렇게 부담스럽고 무엇을 그렇게 내보이기 싫었던 건지 이제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래라면 한참을 읽고도 못 읽은 척했을 문자에 바로 대답을 했다.


그리웠다. 누구가 아니라 누군가가. 연락은 하지 않고 누군지도 몰라 꿈에서나 그들과 시간을 보낸다. 길을 걷고 기차를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다투고 화해하고 헤어진다. 


역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저 기차에 타면 내가 내가 아닌 무엇이 된다. 죽음이 그러할까. 특출한 게 없는 나는 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등을 돌려 걸었다. 고독에 지쳐 조용한 밤에 내뱉는 내 말이 결코 남겨질 만 것들이 아님을 알아 지쳐 꿈에서나 나는 기꺼이 그들을 불러 내가 아닌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말로 울음으로 손바닥이나 주먹 꺾어대는 고개로 써내지 못한 감정은 갓난아기의 그것과 같이 공포가 된다. 그래 모든 감정은 실은 공포 그뿐이었지. 그것을 말로 웃음으로 눈물로 그들의 문장 사이에 흘려주기 시작할 때 나는 괴물에서 사람이 되었던 거지. 


사람들에서 내려앉아 다시 괴물이 되길 원했으니 끙끙 앓고 마는 이 밤은 나의 가장 큰 작품인 것이지.


22.11.25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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