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쓰기 수업에는 유난히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쓰고자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를 글로 쓴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저는 글쓰기 습작기나 초보자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먼저 쓰라고 합니다. 이는 글쓰기 습관과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체화가 글감보다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수업에 참가하신 글벗님께서 극구 어린 시절의 상처를 글로 남기고 싶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그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직은 글쓰기 습관과 방법을 익히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고, 글벗님의 말에서 여전히 그 상처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벗님은 자신이 너무나 쓰고 싶은 주제의 글감이라며 글을 쓰셨습니다.
채 한주가 지나지 않아 글벗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도저히 너무 힘들어서 글을 쓸 수 없고, 쓰다 보니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생각나서 울다 지치고, 그 일에 대해 용서를 했다고,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보여서 괴롭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며칠 쓰다 보니 글쓰기 자체가 싫어진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삶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학이 해야 할 일은 다수에 밀린 '소수자들의 마음'과 '상처' '고통'을 글을 통해 널리 알리고 이를 전하는 것도 매우 큽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귀 기울이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이 생깁니다. 좋은 변화이자 시도이고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살짝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문학작가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거나 평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의 문제와 고통, 상처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은 일명 '의식의 흐름'대로 써야 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독자를 인식하는 글, 공개하는 글이 아닌 1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글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공개하는 그런 글말입니다. 그 후 자신의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며 응어리졌던 마음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면 그것들을 다시 공개하는 글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런 작업방식은 저만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사람도 아니고, 책을 옆에 끼고 다니며 탐독했던 문학소녀도 아닙니다. 그냥 그 시대 누구나 한 번쯤 좋아했던 가수를 좋아했고, 누구나 한 번쯤 들었던 라디오와 tv에 마음을 빼앗긴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게 충분히 제 안의 이야기를 몰래 쓰는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조금은 당당히 제 이야기를 선뜻 이렇게 씁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 것이고요!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글쓰기를!
글 쓰는 한량 이윤영작가
덧) 제목과 본문에 쓴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왜 이리 아름다운지"는 한강 작가가 어느 대담에서 한 이야기를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