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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Feb 10. 2023

공중부양 중인 한옥과 바위 성의 데페이즈망

 

인천공항 제 1터미널에 은빛으로 우뚝 선 도약의 에너지를 내뿜는 조형물은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교통 터미널이다입출국의 첫 관문인 이 공간의 실내에는 투명한 갑사로 지은 한옥이 공중에 떠 있다기와 지붕과 추녀의 섬세한 입체감이 도드라진 노란 한옥은 또 한 채의 푸른빛 한옥을 품고 있다아스라한 신비감을 풍기는 공중의 한옥은 설치 예술가 서도호씨가 지은 집 속의 집이다같은 제목으로 2012년 리움 미슬관에서 개인전도 개최되었다이별과 귀향의 첫 발을 딛는 공간에서 한옥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반가움과 동시에 은근한 당혹감도 느낀다가옥의 소재로 사용된 갑사는 의식을 배반하는 시각적 아이러니이고공중에 떠 있는 집이란 공간적 아이러니다물건이나 대상이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뜻밖의 장소에 놓일 때, 그것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낯설고 묘하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을 풍긴다. 이러 기법을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 하는데, 르네 마그리트 같은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다. 프랑스어로 데페이즈망의 원래 의미는 또한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의 기분이라는 의미도 있다. 영어로 옮기면 방향감각 상실 disorientation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공중부양중인 서도호의 갑사 한옥은 데페이즈망의 3차원적 구현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은 또한 르네 마그리트가 그렸던 <피레네의 성>을 연상시킨다. 바다 위에 거대한 바위가 떠있고 그 꼭대기에는 성이 있다. <집 속의 집>이 그런 것처럼 <피레네의 성>은 중력을 배반하고, 일상적 공간감을 배반함으로써 생뚱맞은 이미지라는 감상을 품게한다.


상: 서도호 <집 속의 집>

하: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한옥은 국가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작가에게는 사적인 기억과 역사가 담긴 오브제다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집이란 감성과 정신이 자라는 공간이며 자아를 구성하는 기억이 고여 있는 공간이다나를 정의하는 공간적 요소를 집이라고 한다면이국의 거리에 불시착한 집이라는 오브제는 고향을 떠난 자의 향수와 애수, 혼돈이 뒤섞인 감정, 데페이즈망을 재현한다. 서도호 작가는 낯선 장소에 불시착한 집, 즉 맥락을 벗어난 장소에 집을 설치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유년기의 감각이 베어 있는 한옥, 청년기의 기억이 베이있는 뉴욕의 아파트 실내의 탁본을 떠서 실물 크기로 복제해 천으로 집을 제작한다. 그는 작품들에 이주(移住)의 감정, '집'의 구조와 인생을 담으려 한다고 밝힌다. 그런 이유로 그가 갑사로 지은 고향집한옥은 세상의 모든 노마드들에게서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자신의 기억을 담은 공간을 직물로 복제해 낸 그의 작업은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의 열망처럼 보인다대표 작품으로, 영국의 이스트엔드 웜우드가  육교 위 (Bridging Home, London)에 떨어져 내린 반파된  한옥이  비스듬히 꽂힌 채 6개월간 전시되었는데, 그 장면에 설명이 필요없이 마음이 아려오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학생회관 건물 옥상에 비스듬히 걸쳐진 가정집이 (fallen star, UC San Diego) 전시되고 있다런던의 육교 위에 떨어진 반파된 한옥은 어떤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짙은 페이소스를 전달한다말그대로 데페이즈망의 실질적 구현이다.

 

20세기 초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역시 이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통로로 꿈속에서 연출되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언급할 때 전치(displacement)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와서 그것은 데페이즈망이라는 기법이 되었다. 마그리트는 어떤 이미지에 모순되는 개념을 결합하거나, 크기를 터무니 없이 확장하거나,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뜬금 없는 장면을 연출하기를 즐겼다. 다시 말하면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거나 시각적 아이러니를 제시함으로써 관객들의 습관적이고 자동적인 사고과정, 이미지를 바라 볼 때 일어나기 마련인 자유 연상이나 습관적인 사고작용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연상이 어느 정도의 일관된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17세기 사람들도 알고 있었고, 그 중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48년에 출간한 <인간 이해력에 관한 탐구>에서 어떤 대상이나 이미지를 바라볼 때, 발생하는 연상과정이,  유사성, 인과관계,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 근접성의 원리로 일어난다고 요약했다. 현대에 와서는 연상과정에 있어 정보의 신경망이 활성화 될 때,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일어나지만, 그 중에 소수만 의식에 입력되고 나머지는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고 침묵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어쨌건, 20세기의 마그리트는 <피레네의 성>이나 <골콘다>에서 보듯이 중력의 작용이라는 상식을 배반하고, 바위를 의외의 공간인 바다 위에 배치해 일상적인 공간감각을 뒤집는 이미지를 즐겨 연출하면서 유사성, 인과관계,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 근접성의 원리로 발생하는 연상작용을 차단하려 했다. 익숙하던 것이 낯설어질 때 우리는 못 보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긴장하며, 의식적 주의를 기울인다. 새로운 관점에도 눈을 뜨게 된다. 예컨대, 데페이즈망의 효과를 도발적이고 직접적으로 사용한 작품, <이미지의 배반>은 파이프를 그린 시각적 이미지와 동시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언어적 아이러니를 제시함으로써 (똑같은 포맷으로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도 제작했습니다)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미지가 아무리 사실적이더라도 그것은 현실의 모방이자 환각일 뿐 실제가 아니다. 실제와 이미지, 이미지와 언어 사이의 괴리는 극복될 수 없다.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 실체를 연상하지만, 마그리트는 작품에서 이를 부인하는 언어적 선언을 함으로써 관객들은 무의식적 자유 연상을 차단당하고, 의식적인 사고과정으로 진입하게 된다.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만 Daniel Kahnnerman은 의사결정과 판단과정은 두개의 상이한 사고 체계, 즉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빠른 시스템 1과 논리적이고 통제와 주의를 요하는 느린 시스템 2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한다. [1]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카너만의 심리학적 체계로 해석하자면 데페이즈망 기법은 빠르고 직관적으로 작동하는 사고체계인 시스템을 논리적이고 느리게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려는 실험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상사태나 위기 상황에서는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시스템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반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정교화된 작업을 할 때는 신중하고 통제와 주의력이 요구되는 시스템 2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면 일상적이고 익숙한 회화적 이미지를 바라볼 때 시스템 1이 작동하지만 마그리트는 이런 일상적 이미지들의 크기를 과장하거나 엉뚱한 맥락에 두거나 모순되는 자극과 함께 둠으로싸 시스템 

2를 활성화 시키려는 것이다

.

<잘못된 거울> 이란 작품은 눈을 그려 놓고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잘못된 거울이라고 한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 마그리트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실제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잘못된 거울 (눈) 속엔 하늘이 비춰지고 검은 동공은 작은 점처럼 찍혀 있다. 이 그림은 동공이 정신적 노력을 보여주는 민감한 지표임을 알아낸 심리학자 에크하르트 헤스 Ekhart Hess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는 연구 참여자들이 여러가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과제의 난이도가 높아짐에 따라 참여자들의 동공이 비례해서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큰 동공을 가진 사람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멋진 이미지를 볼 때 그리고 어려운 과제를 할 때 동공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정신적 소모가 커진다는 뜻이다. 즉 고도의 주의력과 통제력이 요구되는 느린 사고체계가 작동할 때 확장된 동공은 그 사람이 정신적 노력을 질주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스템 1이 활성화된 산책자의 동공보다 훨씬 크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잘못된 거울>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독특한 초현실주의 회화는 인식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극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스타일은 생계를 위지하기 위해 광고와 서적 디자인 등을 하며 상업화가로 오랜 세월을 보낸 것에서 유래했고 이미지를 부정하는 텍스트를 회화에 적절히 사용한 접근법은 개념예술의 토대를 마련했다그의 사실적이나 사고의 전환을 직설적으로 유도하는 작품들은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 예술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작품들은 광고나 영화에서 자주 패러디 되곤 한다. 중력을 거슬러 바다 위에 공중부양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그린 <피레네의 성>은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느낌을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천공의 섬 라퓨타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가 이 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 Daniel Kahneman (2011).Thinking, fast and slow 

경제적 판단과 관련한 인간의 의사결정과 사고체계를 연구한 카너만은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심리학자이고

경제력과 정서적 행복에 비선형적 상관 관계를 밝혀낸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최초의 심리학자다

.(2) Ekhart Hess. (1965) Attitude and pupil size, Scientific American 212, , 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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