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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04. 2023

중세로 간 시간 여행자 - 얀 반에이크

중세의 브루게는 북해와 발트해 연안 도시들을 연결하던 국제 해상무역 연합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의 거점 도시였다. 12세기부터 세력을 강화한 한자 동맹은 현재의 독일에 속한 도시들인 뤼베크, 함부르크,브레멘 등을 본거지로 해서 비독일어권에 속하는 브루게, 런던의 스틸야드, 노르웨이의 베르겐에까지 지사를 운영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투 기능을 갖춘 상선은 세계 각국에서 값비싼 물품을 브루게로 실어 날랐다. 러시아에서는 모피가, 런던에선 양모 제품이 실려 왔으며 지중해에서 올라온 갤리선들은 향신료와 실크 등의 사치품을하역했다. 이 물품들은 다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그리고발트해 연안의 깊은 지역으로 수출됐다.신의 축복을 받은 풍요로운 도시를 교회의 제단화에 담아내던 반에이크는 그 아름다운 세계에 속한 자신을, 세상의 일부인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누구와도 다른 존재인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아가 눈을 뜨자 최초의 독립 자화상이 탄생했다. 같은 시기 대륙남쪽의 피렌체에선 은행가인 메디치 가문이 집권해 르네상스의 서막을 준비하고 있었다.반에이크는 플랑드르의 마사이크 출신으로 1390년경 출생해 네덜란드 부루고뉴 공국의 브루게에서 필리프 3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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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겐트시의 바보 성당Cathedral Bavo에 걸린 「겐트 제단화」를 완성한 1432년 이후다.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형 후베르트 반에이크Hubert van Eyck가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동생인 그가 완성했다. 제단화는 12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고 그중 8개는 양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반에이크는 신의 세상을 담아내는 거울 같은 회화 제작을 자신의 소명이라 여긴 것일까. 이 제단화에는 아담과 하와가 등장하는 『창세기』부터 ‘수태고지’,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 시각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게다가 성화의 배경을 나자렛이 아닌 플랑드르의 현실적인 공간으로 재현해서 건물들과 그 그림자, 거리 위의 사람들, 전원의 풍경까지도 더할 수 없이 정확하게 기록했다. 제단화의 중앙 패널에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 받는 예수가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반에이크는 암묵적인 룰을 깨고 육신의 예수 대신, 속죄양인 ‘신의 양lamb of god’을 문자 그대로 재현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미지는 다소 파격적이다. 획일적인 양식으로 제작되는 제단화와 변별되는 자신만의 제단화를 제작하려는 의도였다면 그는 조숙한 중세인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안 르네상스 연구의 초석을 놓은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는 타인과 차별되는 개성의 대두라는 점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르네상스의 특징이라 꼽았지만, 조숙한 개인주의는 플랑드르에서 이미 눈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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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예수의 고난받는 육신 대신 속죄양을 문자 그대로 그린 이유는 여전히 궁금하다. 인체의 이상적인 비례와 원근법에 근거해 회화를 제작했던 르네상스와 달리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은 대상과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있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반에이크의 의도는 예수의 몸을 도식과 일반적 제단화의 양식에 기대어 그리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관찰한 속죄양을 재현하려는 고집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플랑드르적 사실주의와 강박성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어린 양을 직접 관찰하고 제작한 이미지는 자연 관찰과 경험에 근거한 회화적 구현의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생각하자니 섬유의 직조와 무역이 발달했던 지역적 특성과 양모를 시각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섬유 무역상들의 주의를 끌겠다는 세속적인 야망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12개의 패널이라는 획기적인 제단화의 양식,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극사실적인 정교함, 그리고 예수의 고난을 표현하는 방식은 반에이크만의 적극적인 혁신성과 개성이다. 그랬던 만큼 이 제단화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었고, 그만큼 많은 수난을당했다. 이 제단화에는 속죄양이 제단에 등장했다는 파격뿐 아니라,모호한 암호가 숱하게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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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에 대한 경배-겐트 제단화Adoration of the Mystic Lamb」(1432)_전면

「어린 양에 대한 경배-겐트 제단화」(1432)_닫힌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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