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난
느닷없이 태풍이 불어닥친 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다. 그것은 위키드에 등장하는 서쪽 마녀의 센 입김처럼 대륙의 남단 1000마일을 넘게 직진했다. 시속 160마일의 속도로 질주한 바람은 오스틴, 휴스턴, 루이지애나를 가로지르며 여러 도시의 주요 시설들을 휘젓고 할퀸 뒤 플로리다를 뒤흔들고 대서양으로 사려져 갔다. 송전탑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던 덕분에 도시 전체의 백만에 가까운 가구가 일시에 정전을 겪었지만 차례차례 복구가 되었다. 우리는 28시간 만에 다시 광명을 찾았지만 도시의 전력 복구 작업은 일주일이 훌쩍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랫동네에는 날아가버린 지붕을 파란색 덕테이프로 막아놓은 집들이 수두룩하고, 담장이 날아가 어수선한 뒷마당을 대책 없이 드러내 놓은 집들이 태풍의 여파를 증거 한다. 5월이 중순을 넘어서면서 장마나 홍수가 드는 일이 간간이 있었지만, 태풍과 회오리바람에 도시가 파괴되는 바람의 난은 처음 겪는 일이다. 며칠 전에 발생한 또 다른 태풍은 댈러스에서 시작해 오클라호마를 거쳐 현재에는 캔자스를 날려버리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태풍이 불던 저녁, 나는 한국의 편집팀과의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1월 말 계약 후 실질적으로 원고 마감까지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초고의 전체의 완성도가 아쉬운 감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상반기에 출간을 마무리 짓고 올해는 좀 쉬고 싶었다. 예정된 계획은 여름 전에 출간을 마무리 짓는 것이었기에 우린 좀 서둘렀다. 직접 원고를 읽은 대표가 추가로 시간 말미를 제안하며 목표를 올려 잡으라고 했다는 전언을 팀장으로부터 전해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태풍이 오기 직전까지의 일상을 기록해 두자면 이렇다. 극도로 악화된 눈의 상태를 견뎌가며 4월 말 원고를 넘긴 뒤 나는 마음 묶인 데가 없는 완전한 해방감에 쾌재를 부르며 아침저녁으로 코트에 나가 공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다시 요가와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그러고도 힘이 남으면 물감을 섞어 그림을 그리면서 환생한 듯 5월을 보냈다. 지난 6년간 다니던 피트니스 역시 리조트형의 가족친화적인 분위기이긴 했지만 차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거리였다. 새로 옮긴 리조트형 피트니스 센터는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타운의 모든 레저활동을 흡수하겠다는 듯 각종 편의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타운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마주 보고 위치한 교회와 피트니스 센터가 주민들의 여가시간을 흡수하는 공적인 공간일 뿐, 교회와 주택가 사이에 펼쳐진 녹지와 산책로에는 평일 낮에는 그림자 하나 찾아보기 힘든 타운은 지극히 평화롭고 단조로운 풍경이다. 지난 3년은 서울에서 봄과 여름을 보냈기에, 인적없는 한낮의 고요한 주택가에 내려앉는 뜨거운 햇살과 고즈넉한 휴스턴의 봄이 새삼 반가웠다. 가끔은 예쁘게 만든 근육을 자랑하며 상체를 탈의하고 천천히 조깅을 하는 젊은이들 산책길에서 마주칠 수 있지만, 피트니스 센터에는 그런 근육맨들과 유모차에 꼬맹이 셋을 태워서 운동 다니는 늘씬한 엄마들로 가득하다. 백발을 반짝이는 시니어들도 예외는 아니다.
열 개의 야외 피클볼 코드와 다섯 개의 테니스 코트가 마련된 야외 공간은 아마도 가장 활력 넘치는 공간일텐데, 운이 좋은 날은 코트를 마주 보는 어린이 코너에서 치어리딩을 연습 중인 대여섯 살짜리 꼬맹이들의 응원을 즐길 수도 있다. 열심히 공치는 아빠 옆에서 아빠이름 외쳐가며 맨발로 응원하는 꼬맹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엘보의 통증이 도져서 간간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통증이 잦아들면 다시 나가 공을 친다. 코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중언어를 사용하고, 책상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재택 근무자들로 데이터 전문가들이거나 시스템 전문가들이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서 지친 눈과 마음을 쉬느라 퇴근시간 땡소리가 무섭게 코트로 뛰어나오는 그들과 쉽사리 공감대를 형성한다.
태풍이 불어닥치기 한 시간 전, 그때는 아직 해가 길고 환하게 남아있었다. 몸이 땅 속으로 꺼질 것 같은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왔던 것은 태풍을 불러오는 기압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절하듯 침대에 누워있으려니 토네이도 워닝이 요란하게 울렸고 뜻밖에 토털 이클립스가 진행되었다. 사방이 일순간에 어두워지고는 빛과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마녀의 비명 같은 날카로운 바람소리만 한 순간에 온 집을 감싸고돌았다. 마술에 걸린듯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서쪽 마녀의 장난이 분명했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지붕을 날려버리고 나도 공중부양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옛날 사람들이 미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던 이유가 왈칵 납득이 되었다. 위키드에서 이바 멘데즈는 신나게 defying gravity를 불렀지만, 바람의 날갯짓을 따라 중력을 거스르는 현실은 무시무시한 난장판이었고, 인간에게는 결코 신나는 일일 수 없었다.
창 밖에선 나무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가 집 쪽으로 넘어진다면 서재를 덮칠 것이고, 옆으로 넘어진다면 드라이브웨이에 세워둔 차를 덮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집을 나와 차로 들어가 미팅 30분을 앞둔 편집팀에 비상사태를 알리고 미팅을 연기했다. 나무가 넘어져도 차를 덮치지 않을 거리에 위치를 옮겨 놓는 사이, 내가 탄 차가 defying gravity 날아오를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도 모르게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거나 애초에 정해진 운명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30여분이 지나자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농담처럼 사방이 다시 밝아졌다. 남편도 사고 없이 무사히 퇴근했다. 정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기에 낮에 장 봐온 좋은 음식들을 우선 소비했다. 실내의 유일한 광원이었던 식탁 위에 켜둔 촛불 아래 스테이크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와인을 따고 좋은 잔을 꺼내면서 여유를 부렸다. 나무가 뿌리 뽑혀 집으로 넘어지지도 않았고, 내가 차에 탄 채 바람에 날려가지 않았으니 괜찮잖아. 이재민이 될 위기도 면했고 내일 아침 뉴스에 날 일도 없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여유를 부리며 축배를 드는 사이에 타운을 연결하는 소셜 미디어 앱은 쉴세 없이 링링링 울려대며 어느 서브 디비전에 전력이 복구되었는지를 차례차례 전하며 환호성을 울려댔다. 광명을 되찾은 환호성의 지역적 패턴을 그려보면 언제쯤 어느 지역이 복구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강제적으로 매끼를 포식하며 드라이브도 나갔다가 산책도 하면서 전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 하루 만에 다시 백색 소음과 함께 전기가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토요일 오전 피클볼 코트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어젯밤에 에피소드가 좀 있었지' 하는 표정들을 하고서 모여 들었다. 여전히 재난은 진행 중이고 에어컨과 냉장고가 가동 중지 중이지만 어쩌겠어. 때가 되면 복구가 되겠지. 내가 집에 있는다고 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때까지 공이나 치자고…. 하는 표정들이었다. 담대하거나 피클볼에 미친 것이거나, 둘 다인 사람들이다. 나쁘지 않다.
지붕이 날아가지도 않았고, 집 앞의 나무는 가지가 부러지긴 했지만 뿌리가 뽑히기에는 너무 컸고, 나무 소재의 담장이 휘어지긴 했지만 이웃들과 분담으로 다시 세우기로 했다. 산책길엔 두 동강 난 연필처럼 허리가 뚝 꺾여버린 나무들이 눈에 뜨였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송전탑의 사진이 동네의 소식통에 올라왔다. 평소에도 드문 드문 산책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이 타운은, 하루 이틀의 정전소동을 제외하고는 이번에도 비교적 큰 탈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태평양 해수면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엘 니뇨가 라 니나로 바뀐 덕분에 올해는 텍사스가 잦은 태풍을 맞게 될 거라는 기상청의 달갑지 않은 예고를 접했다. 자가 발전기를 장만하고 비상사태를 대비하며 낯선 장비들을 사들이느라 분주한 5월 말. 태평양과 대서양의 차가운 해수층이 상승한 탓으로 멕시코만 연안은 서늘하고 습기 많은 봄을 지냈고, 6월을 바라보는 아직까지도 습기 머금은 회색 하늘 아래 서늘한 아침을 맞고 있다.
유독 서늘하고 아름다웠던 은혜로웠던 지난 봄 이었건만 개인적으로 대단한 팬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타계하심으로써 한 세대가 문득 막을 내렸다는 자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약속이나 한듯이 일시에 가실 수가 있는지…..
코끼리와 침팬지 세계의 심리학을 연구해 주옥같은 저서들을 남긴 공감주의자 프란츠 드 발이 타계하시고, 그의 뒤를 따라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심리학자 데니얼 카너만이 타계하셨다.폴 오스터에 이어 지난 주에는 앨리스 먼로까지 타계하시면서 장구한 한 세대가 막을 내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 고전에 이름을 올릴 것이고, 세상은 그들의 유산을 품고 또 다른 세계로 흘러가겠지만…. 시간을 잊고 있는 것은 나만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