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현희 Jul 16. 2024

이름을 기억하는 방법

사우디 아라비아로 출장 갔던 로스가 두어 달 만에 그룹챗에 등장해서는

 guess who's back? i'm in tonight (for pickleball).

샘이 시치미를 떼고 대답하기를

trump? biden? mosquitos? centerpoint power? my youth? too many option!

깔깔깔..


해가 질 무렵이면 섭씨 30도쯤으로 기온이 내려간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텍사스의 강인한 시민들은

석양과 시원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오늘 분량의 공을 친다.


공을 높이 띄우면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상쾌한 코트

너그러운 뭉개 구름이 캐노피를 만들어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ll my boys- including hubby- swim, run, and ride cycle. They do everything  but ball game.

They only fight against themselves. And I am the only one fighting against other people, playing racqueball, pickleball, and other ball games.

he calls me ball moth  


샘은 한 시간도 넘게 옆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피클볼 코트로 넘어와

나와 파트너가 되어 로스팀을 향해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로스의 강력한 스핀을 받은 서브는 땅에 떨어져 반대 방향으로 튀어간다.  

공이 눈앞에서 휘어 버리고 땅에 닿아 반대로 튀어버리는 서브를

좀처럼 받아치기 어려운 나는 로스의 허를 찌르는 짧은 서브로 되돌려 준다.

네가 스핀이면 나는 쑈트다. 서브가 네트를 넘어가서 바로 툭 떨어질 때마다

샘은 만족해하고 로스는 내가 짓던 표정을 짓는다.

어쩌라고...   :(

그러게 어쩌라고..  ;)


축구광인 크리스천은 새하얀 수염이 멋진 신사인데

오늘은 하늘색과 흰색 스트라이프가 산뜻한 아르헨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남미 연합 축구 토너먼트인 copa america에서 어제 아르헨이 우승을 거둔 거다.  

축구광인지라 손흥민과 나를 동일 범주에 넣는 크리스천은

내가 롭 lob을 띄워 상대편 코트의 가장자리에 툭 떨어트릴 때마다

south korean magic!! 을 연발하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흔든다.





남부 텍사스는 더 이상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플랜테이션 백인 농장주와 카우보이들의 땅이 아니고

전 세계의  자유통행권을 지닌 지식 노동자와 첨단 기술 전문가들이 모여드는 기술의 헤드쿼터다.

함께 공을 치는 멤버가  몇 달씩 얼굴을 보이지 않을 때면  그들은 어디론가 출장 중이다.

유럽으로, 아랍으로, 아시아로, 남미로,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소가 풀띁고 말이 경주하고 목화 따던 농장은 지난 세기의 그림일 뿐.

남부 텍사스에 모여든 세계시민의 시선은 인간의 시력으로 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은 전 세계 대양의 심해를 향해 수천 킬로 하강한 뒤

해저의 단단한 바닥을 뚫고 그 아래 묻힌 석유를 탐사하고 개발 거나

반대로 fast moving viehcle을 개발하고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고 또 쏘아댄다.  

그와 관련되어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제반의 숨어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리하거나,  

세계 최대 규모 의료 센터인 텍사스 메디털 센터의 의료 관계 종사자들이다.

그런 일들은 대체로 일상의 풍경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개발된 지 30년 남짓한 서버번의 고요한 생활은

생활의 냄새도, 소음도, 생활의 너저분함이란 일체 바깥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 진공 포장 같은 것.

말하자면 적제 적소에 모든 것을 갖추어 놓은, 생활의 때를 묻히지 않은 모델하우스의 삶 같은 것.   

도시생활의 조금은 피곤하고 조금은 흥미로운 소음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것이다.

도시가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먹고, 입고,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모습과 다양한 풍경들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시티 스멜을 말하듯,  빠르게 감각기관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자극이 도취적이기 때문이다.  

삶의 역동성도, 다채로움도, 너저분한 진실들조차도...

거리에  흘러 다니는 사람들의 냄새를 뒤로하고

진공포장된 것 같은 서버번의 생활도 적응되고 나면 생활의 편리성과 산뜻함,

광활한 풍경의 청량함은 즐길만한 것이 되고

약간의 지루함은 지구 반대편으로의 출장과 여행을 기다리며 참을 만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서버번에서 자란 아이들은 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냄새로 도시를 식별하는 것이다.

웩 city smell.... 엄마 시티 스멜가 너무 나..



이웃 주민들과 인류애 북돋우며 공을 치다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american-born 들은 veronica라는 고유명사를  victoria, virginia, valerie와 어김없이 혼동한다.

그들이 나를 부를 땐 넷 중에 하나를 뽑아서 부르는 반면

foreign-born, 특히 가톨릭과 아랍 출신들은 한 번에 vero로 입력하고 이름을 틀리는 법이 없다

아마도 신교 monolingual들은 veronica의 종교적 기원을 떠올리지 못하고

 V로 시작하는 닮은 고유명사들을 음운학적으로 범주화하고 있는 반면

가톨릭 세계의 시민들은 무려 "십자가의 길 6처, 예수님의 피땀을 닦아드린 베로니카"를 기억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수건을 들고 있는 여인은 중세 이후 종교화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로 사랑받아 왔다.

화가들은  용기 있는 여인 베로니카의 얼굴을 자기 취향대로 그려왔다.

예수님의 참모습을 담고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은

 veronica는 vera (truth)+icon "진실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베로니카는 진실의 아이콘, 진실이다.

어려운 이름.



한스 맴링. 플랑드르의 화가가  1470년에 그린 "베로니카의 수건", 유화, 미국 내셔널 아트 갤러리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와 함께 늘어가는 운동화 숫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