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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Apr 04. 2024

어떤 태도

 <슬픔도 태도가 된다>로 읽는 불안과 공항, 그리고 안정감에 대하여.

한 달 동안 바뀌지 않고 SNS 메신져 프로필 소개글로 저장해둔 문장이 있다. '태도가 경쟁력이다.'

예전에는 신념이나 가치관만이 태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태도가 더 많은 영역에서 신념과 가치관을 대신할 때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의지는 한번 마음 먹기 어렵고, 마음 먹어도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태도는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면 더욱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수치로 경험하고 보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아갈지 '선택'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사실 앞에 놓이게 된다.


1. '불안'의 태도

우리의 안정감이란
불이 들어오고 있던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스치는 실망 같은 것
:
어둠 속에서 네 이마가 희미하게 빛났다.
어둠은 태어날 때마다 신선하다며
사랑과 이기심은 이복자매일 것이라고
보이지만 안 보이는 척했다
사람을 아는 척 했다
(‘정전’, 31쪽)


이 시를 읽고 줌파라히리의 <일시적인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정전 때문에 사이가 안좋던 부부가 촛불을 사이에 두고 마침내 서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빛의 상태에서 “보이지만 안보이는 척”하던 것이 어둠 속에서는 더 적나라하게 가식없이 드러날 때가 있다. 불현듯 습격한 어둠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익숙했던 사물을 낯설게 만들지만 결국 그 어둠도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사물이 눈에 익는 순간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어둠속에서도 존재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그 순간을 숨죽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기다림의 순간 마저도 불안의 태도로 읽히는 시대다.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기 위해 공황장애 약을 먹고 상사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 호흡곤란이 오고, 연인과의 이별이 두려워 몸떨림과 극심한 식은땀에 시달리고, 운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멀미약을 먹는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공항장애와 불안장애, 변화포비아 같은 증상들은 지금 20-30세대에게 흔한 현상이자 태도가 된 듯 하다. 이러한 증상을 일상적으로 달고 다니면서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의 증상에 두려워한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별의 두려움, 상실의 고통,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실수했을 때의 부끄러움, 나태함, 누군가에게 상처줄 것 같은 걱정, 삶을 살아가면서 흔하게 느끼는 다양하고 평범한 감정들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증상과 병증으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무수히 많은 상황과 사건 속에서 우리가 느끼게 될 다양하고 무한한 감정은 '어둠'의 형태든, '빛'의 형태로든 순식간에 우리를 장악하고 압도하여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매순간 우리가 겪게 될 다양한 감정들을 '불안의 태도'로 읽을 것인지 '변화의 태도'로 읽을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2. '수긍'의 태도

지난 달력의 기념일들을 옮기다가
꽃 따위에 대한 기대도 없이 3월에서 멈췄다
그날들을 더이상 표기하지 않을 때
소멸을 생각한다

버스에 탑승한 이상 언젠가는 하차해야만 한다

쌓아놓았던 나이를 다 뜯어먹은 노인마냥
폐허를 경유한 사람은 수긍의 기술을 안다
(‘한파주의보’ 중, 14-15쪽)


어둠이 내려야 빛이 오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변화가 있어야 새로움이 발생한다. 완벽하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나무가 무성하게 푸르러 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잃었던 것은 새로운 것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인생이라는 "버스에 탑승한 이상 언제가는 하차"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 대부분은 불안의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현재의 삶을 꾸려간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그대로일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놓치게 되는 건 안정감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차"해야 하는 불안한 생이라는 사실이다.


나에게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자 내 모든 욕망의 근원이고, 삶의 근본적인 정서이다. 불안은 나를 낳고, 길렀으며, 나의 부모이자 형제이다. 불안과 불안과 불안의 연속에서 성장하다보면 일정한 불안감이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갈등도 없고, 문제도 없고, 잡음도 없고, 모두가 다정하고, 매순간이 평온한 그런 일상의 연속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감’이라고 지칭하지만 나는 그것을 ‘권태’ 부른다. 그리하여 나는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다. 안정감은 "불이 들어오고 있던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스치는 실망"처럼 언제고 깨질 수 있는 것이고 동전의 양면처럼 불현듯 불안의 상태로 우리를 데려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불안을 '수긍'함으로써 내 삶의 권태를 억누르고 '안정'과 '불안'이 평행하게 공존하는 궤도에 진입했다. "폐허를 경험한 사람"만이 "수궁의 기술"을 아는 것처럼 비로소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들어섰다고 요즈음 생각한다.


3. '반성'의 태도

구매하고 한번도 신지 않은 구두가 희망이라면
한쪽으로 뒷굽이 닳은 구두를 권태라 해도 되나
게워내듯 부글거리며 부패하고 싶은데
냉장실에 갇혀 억지로 싱싱한 척하는
요구르트의 표정을 강박이라 해야 하나

상대에게 자신없고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의지하며 반색하고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양극단만 출렁거리는 사람은 부담스럽다

편애는 감춰둔 미움이 많다는 뜻
밑줄로 끄덕이던 책의 직관들조차
며칠이면 타인의 진술처럼 희미해지니까
오늘의 감정이라는 밑줄에 휘둘리지 않아야겠지
수시로 갈등하며 하루마다 환절기를 앓는 것
(‘취소’ 중 40-41쪽)



노력없이 당연하게 주어진 혜택이 '혜택'이 아니라 그동안 당연하게 자신들이 누려온 누군가의 배려 혹은 희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그 혜택 속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에 들어갔을 때 언제나 깨끗한 수건과 양말이 있고, 냉장고에는정성스럽게 만든 반찬들이 가득하고, 서랍장에 잘 개켜진 옷들이 당연한 사람들, 신입인데 월급은 높았으면 좋겠고, 워라벨은 너무 중요해서 정시퇴근 정시 출근은 하면서 자기 일에 대한 성과를 높이기 위해 시간 투자에는 인색하고,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그만큼 노력은 안하고, 어떤 책임도 지기 싫으면서 자신이 누리는 것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타인에게 사랑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자신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것들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양극단만 출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또한 그런 사람인 적이 없는지 '반성의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다.


혐오하지만 떠날 수 없고, 싫어하지만 버릴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하므로 "오늘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수시로 갈등하며" 매일 "환절기를" 앓듯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런 이유에서 조금씩 가벼워질 필요가 있다. 살면서 이런 일, 이런 감정, 한번쯤 누구나 다 겪는 환절기 날씨같은 것이라고 때로는 무시하면서 웃어 넘길 수 있는 유머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시집을 읽는 이유다.


4. 그래서 우리는...

후회는
시간이라는 책의 부록 같은 것
한 해가 또 넘어간다는 예감은
허공의 칸을 나누는 일
(‘연말’ 중 38쪽)


잠은 죽은만큼 깊었는데 꿈도 짧아서
새벽은 미완성인 채로 시작된다
연락도 없이 연락할 것 같아
10월엔 주말 약속을 머뭇거리게 된다
(‘허밍’, 16쪽)


우리는 다양한 태도들을 선택할 수 있다. 십분 일찍 출근하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공감하려는 태도, 적당히 관계의 거리를 두려는 태도, 슬픔을 잘 느끼는 태도, 분노하는 태도, 상대를 깎아내리는 태도, 상대를 높이는 태도, 짜증을 덜 내려는 태도 등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태도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어떤 태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나에게 필요한지는 알지 못한다. 전영관의 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는 '슬픔'을 수긍함으로써 이러한 '슬픔'조차도 태도가 된 사람의 이야기이자,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슬픔, 불안, 안정, 후회, 반성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다.


불안을 수긍할지, 불안을 계속 불안해할지, 이 세상에 슬픔이 없다고 믿을지, 이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할지, 어둠은 없고 빛만 있다고 생각할지, 가난해도 좋으니까 시간이 여유로운 일을 할 것인지,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죽도록 노력을 하던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그저 선택만 하면 된다. 어떤 것을 수긍하고 반성할 것인지. 우리가 지닐 태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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