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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Sep 22. 2022

하리보와 함께 살게 된 사연

동네 편의점 앞엔 노란색 하리보 패널이 서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였다면 관심도 없었을 하리보였지만... 3살 된 딸에게 그 패널은 살아있는 생명체 수준의 옐로곰 아저씨였다. 어린이집 등 하원을 할 때마다 나는 곰 목소리로 변조해 내 딸 지온에게 인사를 했다.


"지온아 안녕, 어디가? 잘 갔다 와, 이따 저녁에 엄마 아빠랑 또 와"

마지막엔 하리보 포즈 엄지 척을 잊지 않고 항상 "최고"라고 외치며 마무리했다.

  딸은 옐로곰 아저씨가 있는 길을 지나기 전부터 엄지  포즈로 대기하고 있었고 최고 인사를 나누었다. 매일매일 오가며 옐로곰 아저씨를 만났다. 하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픽업하셨는데 옐로곰 아저씨를  보고 다른 길로 왔다고 엉엉 우는 바람에 어머님이 "옐로곰 아저씨가 누구니?" 하며 전화가  날도 있었다. 지온에게 하리보는  이상 평범한 젤리 동상아니었다.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의식처럼 매일 인사하는 동네 베프 옐로곰 아저씨였다.

그녀의 아침 루틴 '엄지척' 최고 인사하며 등원하기


그러던 어느  힌남노라는 어마어마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옐로곰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하리보를 찾는 딸에게 태풍이 와서 가게 안에 들어갔다고 말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도 하리보는 가게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지날 때마다 슬퍼하며 하리보를 찾았고 결국 남편이 아이를 재우고 편의점에 찾아갔다. 편의점 주인아저씨는 태풍 때문에 넣어두셨다며 다시 꺼내 놓겠다고 약조해주셨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렸는데도 하리보는 나오지 않았다.


이젠 나까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다시 내놓지 않으실까? 무슨 일이 있나? 이렇게 하리보 패널을 걱정하고 궁금해할 일인가 싶지만나보다    실망하고 기다리는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편의점을 찾아갔다. 여쭤보니 사장님이 " !  남편분이 오셨던  맞죠? 아이가  곰을 좋아해서 기다린다고요" 나는 "네네네 맞아요. 저희 딸이 너무 좋아해서요"라고 격양돼서 호응했다. 그런데 사장님 말씀이 급히  가게를 폐업하게 되셨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태풍 후에 다시 내어 놓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폐업이요?  이제 영업을  하시나요?"라고 말하는  얼굴에 걱정어린 어두운 빛이 스쳤을까?


사장님은 "그러면  하리보 집에 가지고 가실래요? 드릴게요"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서는 감사하다고  소리로 인사하고 받아오고 싶었지만, 데려올 생각을 하니 키도 170 나만큼 크고, 이사 다닐  데리고 다닐 생각에, 어디에 둘까 하는 고민까지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져서 생각해보겠다며 일단 후퇴를 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하니 나와 달리 남편은 흔쾌히 받아오자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럼 어디다 ? (복도에 세워두고 우산 걸이로 쓰면 되지) 그럼 이사   어떡해? (에이 포장이사인데 넣으면 되지 )  쉽게 술술 대답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사실 나도 가지고 싶어..." 나는 ? 하며 물었다 "하리보가 가지고 싶다고?" 남편은 약간 부끄러워하더니 "실은 나도 좋아하리보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여보. 그래 당신 그런 사람이었지...  당신의 이런 소년 미를 좋아했었나. (니키리가 지켜주고 싶단 태오의 소년 미와 다른 )


여하튼 남편이 결정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하리보를 실을 수 있는 짐 차를 준비해 편의점에 갔고 사장님 부부는 "아이가 좋아할걸 생각하니 우리도 기쁘다며" 하리보를 내어주셨다. 몇 년 동안 편의점 밖에서 온갖 먼지와 풍파를 맞던 하리보를 데리고 세차장으로 갔다. 시원한 물줄기를 쏴가며 둘이서 먼지를 닦아내고 에어까지 슝슝 쏜 다음에 집으로 모셔왔다.

우리 집에 도착한 하리보

그렇게 우리는 하리보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하리보를 본 딸의 반응이 어땠냐고? 말해 무엇하리? 처음 집 앞에 서있는 옐로곰 아저씨를 본 딸은 너무 놀라 잠들었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다음날 아침 문 앞에 있는 하리보를 보고는 기뻐서 깡충깡충 토끼처럼 뛰며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그래 이렇게 딸과 아빠의 동심을 지키며 살아간다. 우리 딸의 동심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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