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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Feb 20. 2022

꼬꼬뱅 Coq au Vin

미드 나잇 인 파리?

"맛있게 드셨어요?"


"네~~ 아주 천천히 모처럼 즐기면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 구석진 자리에 혹시 헤밍웨이가?

그냥 지나쳐도 모를 만큼  한적한 변두리 마을 귀퉁이에 고향집처럼 편안하고 느긋한 모습의 집 한 채. 처마 밑으로 드러난 서까래는 현대문명을 힘껏 후진하다 멈춘 것 같다. 누구 집 대문을 열 파란 문 손잡이를 살포시  돌려 여니


'와우! '미드나잇 인 파리???'


매일 밤 12시가 되면 약혼자 '이네즈'를 두고 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은 종소리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차에 올라타고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만나게 된다.

하얀 테이블과 파란색 커튼이 드리워진 구석진 자리에 헤밍웨이나 피카소의 연인이 뮤즈인 '애드리아나'가 나타날 것만 같은 상상은 과하지 않다.


려견 별과의 동행이었기에 예쁜 자리를 모두 건너뛰고(그렇다고 내가 앉은자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의자 두 개가 놓인  테이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사방은 온통 주인이 그린 그림이 걸려있고, 3살 된 반려견 시추작업공간  난로가 놓인 계단에 새로 온 손님을 맞이한다.

사장님의 반려견 시추

행여 웨이팅 하게 될까 봐 서둘러 출발했더니 자리도 시간도 넉넉하다. 바로 내 앞자리 이블에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여인 넷이 아주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데, 내 귀에 블루투스를 장착한 듯 선명하게 들린다. 가 청력이 지나치게 좋은 걸까.


나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너무나 예뻐서 정말 하나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주말마다 떠나는 여행이 익숙해졌는지, 토요일 새벽엔 유독 별이도 일찍 일어나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너무나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별이 참새처럼 수다를 주고받는다,


"데려갈 거죠?"


"혹시 별아~산책할 때 친구들 만나면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는 거니?"


별이도 그림처릠

자리가 불편한지 칭얼대는 별이를 오리고기 육포로 달랜다.


"뭘 드시겠어요?"


훤칠한 키에 용모가 수려한 청년 주문서를 들고 와 묻는다. 전체요리는 정해져 있고 본식을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여러 가지 메뉴 중  라따투이 빠삐 오뜨(라따뚜이와 쿠스쿠스를 종이 일에 구운 요리)와, 연어 탈리아텔레(연어 크림소스 파스타), 꼬꼬뱅(Coq au Vin-포도주에 졸인 닭고기와 감자튀김) 사이에서 오초쯤 망설이다 꼬꼬뱅을 주문한다.


여럿이 오면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 골고루 맛을 볼 수 있는 장점 대신, 나 홀로 사유(思唯)하는 시간을 선택했다.



마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 같은^^

"나는 처음 맞을 때부터 두드러기 부작용이 너무 심했어. 가려워서 긁다 보면 피가 맺히고 정신이상이 되는 것 같더라. 의사한테 말하니까 맞지 않는 게 좋다고 하는데  그건 니지~~ 고집 펴서 부스터까지 맞는 데 성공했어. 백신은 맞는 게 맞아. 그런데 피부는 다 망가졌어."


"나는 이석증이 생겨서 갑자기 천정이랑 방바닥이 거꾸로 있는 것처럼 빙그르르 도는데 한동안 외출을 못했다니까. 지금도 뭐 좋지는 않아."


"나는 미각을 잃어버렸어. 애들 아빠는 안 맞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기는데 왜 맞아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매일 싸운다니까. 자기는 미접종자로 남을거라는데 창피해 죽겠어  아니 왜 남들한테 민폐를 끼치는지 몰라."


"나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데 새벽만 되면 심장이 막 두배로 뛰는 것 같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더라. 그래도 백신은 옳다고 생각해. 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부작용을 연구해서 나한테 제일 적합한 걸 찾아야지."


아니 그 저분들은 친구 넷이 다 부작용?


요즘은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지나치는 사람들조차도 온통 백신과, 정치와,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뿐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는 이렇게 아날로그 한 공간에서조차 용납이 되질 않다.



단호박 &렌틸콩 스푸

먼저 체요리로 새하얀 꽃잎 모양의 하얀 그릇에 렌틸 & 단호박 수프가 다. 샛노란 호박 수프는 내추럴한 달콤함과 렌틸콩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 입안 가득 따뜻한 풍미로 식욕을 돋운다.


치즈 가루에 뒹굴어 나온 야채샐러드와 본식인 꼬꼬뱅이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나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별이는 자꾸 한 입만 달라고 떼를 쓴다.


프랑스풍 유려한 도자기에 담긴 요리 재료를 하나하나 탐색한다. 붉은 와인에 풍덩 빠진 것도 모자라서 타기 직전까지 바짝 졸인 닭고기를 포크로 찍어 먼저 한입 베어 무는데, 고기에 밴 포도주 육즙이 한데 섞여 입안 가득  쏟아. 은와인 특유의 약간 떫은  맛이 아주 살짝 지나갔고, 혀에 찰싹 달라붙었다 미련없이 위장으로 질주하며 남겨 진 육즙의 잔향은 훈훈했다.

꼬꼬뱅(Coq au Vin)

갑자기 하우스 와인이라도 한잔 할까~강렬한 유혹이 밀려왔지만, 별이한테 운전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와인은 집에 가서 마시는 걸로 한다. 그 또한 해석하기에 따라 하우스 와인이니까. 브로콜리와 당근 그리고 감자튀김까지 흔적을 싸악 없앴다. 뼈를 발라내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만 빼면 식사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화가로도 활동하시는 사장님

"여기 분위기 정말 좋네요. 잠깐이지만 시끄러운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우연히 검색하다 찾아왔는데 작가님도 뵙고 정말 복합니다."


"아이고 제가 더 영광입니다 작가님. 3월 중순에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작업실 오픈하는데 그때 꼭 놀러 오세요."


나는  수필집 두 권을 출간했지만 작가라는  말이  늘 어색하다. 아직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 같아서 직장인 80%에 작가 20%라고 얼버무리곤 한다. 프랑스에서 20년간 살다 오셨다는 가님께(장님) 두 번째 수필집 '단 하루의 마중'을 선물해 드리고(가끔 책을 드리는 것이 푼수일까 생각도 한다. 민망지심 가득하다. 드문 일이지만 말이다) 나오는데 문밖까지 배웅을 해주신다.


나의 2022년 2월 세 번째 토요일은 시간여행자가 되어  내가 지향하는 아날로그 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랑스 여행 때 바르비 거리에서 화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작업하던 아름다운 화가는, 온몸에 물감이 덕지덕지한 채 나에게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꼬꼬뱅과 바르비 거리의 화가, 그리고 오늘 만난 인연을 나는 한데 묶어본다. 

음식점과 작가님 이야기는 3월에 작업실에서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쓸 예정이다. 오늘은 수박 겉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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