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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Jun 22. 2022

신사와 아가씨(1)

아가씨! 커피 한잔 합시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다 큰  처녀가!!!"


장독대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그녀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던 막내 고모 부부의 불호령이 그날도 여지없이 떨어졌다.


고모네 가족과 하숙도 자취도 아닌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것은 그녀가 서울에 있는 모기업에 합격하면서부터였다. 그녀의 엄마는 서울에 방을 얻어 딸을 독립시 정도로 넉넉한 형편도 못되었지만, 더 큰 이유는 애지중지 키운 딸을 혼자 둔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 때문이었다. 침 서울에 는 막내 시누이를 생각했고 시누이 살림이 넉넉치않았지만, 여동생처럼 살갑게 지내던  이라 큰 부담 없이 딸을 맡기게 된 것이다.


퇴근과 동시에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정류장까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버스를 고,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고모네 집까지  뛰는 일이 그녀의 하루 일과였다. 아무리 용을 쓰며 뛰어  고모  부부의 불호령은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러기를 1년쯤 하다 보니 지겹기도 하고,  동경했던 서울살이의 낭만은커녕 이십 대를 뜀박질과 불호령으로 보내야 하나 하는 한심스러운 생각에 우울하기만 했다.


 동료들은 칵테일도 마시러 가고, 탁구도 치고, 주말에 등산도 가고,  나이트클럽도 다니고 영화관을 전전하며 이십 대를 불사르는데  대체 뭐하는 걸까란 자괴감마저 들었다. 시 고향으로 내려갈까  수없이 생각해 보았지만 서울을 떠나기는 싫었다. 항 한번 할 줄 모르는 숙맥 중 숙맥 속 슬슬 반항기가 오르기 시작했을 때는 겨울 이듬해 봄을 그리고 여름 뛰어다니 보내고  가을 초입에 들어때부터였.


살갗이 도들 해질 만큼 찬기운이 돌던 어느 가을날, 퇴근 무렵 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서소문에 있는 회사에서 시청 앞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가던 일을 접고,  배재고등학교 언덕을 넘어 정동교회를 지나 새문안교회까지 걷다가 다시 종로 3가까지 걸은 후 답십리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차창에 희뿌연 시간이 달라붙었고 그것은 이내 회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촘촘하게 달라붙은 도시의 몸에서 성글게 불빛이 반짝거렸다.  답십리에 도착했을 때는 전봇대에 매달린 불빛이 시멘트 바닥 위에  둥근달을 만들고 있었다.


땅속 어디선가 그녀의 다리를 잡아 끄는 것처럼 무겁기만 한데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봇대에 기댔다. 등에 달라붙는 전봇대의 차가운 느낌이 서러웠다. 가로등 불빛 아래 흩뿌리는 가느다란 빗줄기를 바라보며 누군가 배철수가 부른 '빗물'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탓인지 그녀의  블라우스가 푸르스름하게 보였고, 핑크색 앙고라 조끼와  짙은 보라색 짧은 고르덴 스커트 아래 깡마른 종아리가 애처롭다 느껴졌다. 굽이 뾰족한 흰색 하이힐은 지친 그녀의  무게를 말없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고모네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재빠르게 숨어들었다. 건장한 그림자가 그녀의 그림자 위에 포개졌고 순간 겁에 질린 그녀는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미용실 주인이 알려준 뒷문으로 빠져나 동네 약국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반듯한 정장 차림의 건장한 신사가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저,  아가씨! 커피 한잔 합시다."


심장은 메스꺼움이 느껴질 정도로 쿵쿵거렸다. 마침 의상실 주인이 보고 있다 그녀를 잡아끌었고 그녀는 다시 의상실 뒷문으로 빠져나와 정신없이 달려 고모네 집 현관 벨을 눌렀는데......


제목만 수십 개를 달아놓고 게으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겨우 발 하나를 꺼내본다. 잔잔한 안부를 묻는  몇몇 작가님들에게 뭉클한 감사와 송구함을 동시에 전하며, 인생이란 때론 비를 맞는 것이라고. 그런 것뿐이라고 별일 아니라고,  글은 쉬지 않고 쓰고 있었다고, 작가님들 글에 댓글과 공감을 누르지 않았어도 생각났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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